(과장 좀 해서) 미국의 시대가 가고 아시아의 시대가 오는가?



지난해 한가하게 놀면서 가장 잘한 일중의 하나가,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소녀시대>공연을 보고왔다는 것이다. 20대 시절 라이브 공연을 많이 못본 일종의 부채감이기도 했는데, 어찌됐건 상당히 감명을 받았기에 이곳 저곳에서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역시 현장이란 수많은 글감의 원천이 된다.

게다가 아시아를 전문으로 공부하는 사람에게 "한류"나 "케이팝"이란 일종의 교양과목이다. 어느정도 논리를 갖추고 있어야만이 현대 아시아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다. 어찌저찌 케이팝을 듣다보니 소녀시대와 투애니원이 뇌리에 꽂혀 버렸다.

지난해 10월 박준흠 선생이 만드는 음악 무크지 <사운드 SOUND>에 글을 한편 써보겠노라고 제안을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하셨다. 그리하여 11월초 약 5일간을 끙끙 앓으면서 200자 원고지 '200매 대작'을 한편 완성시켜서 보냈는데, 예상만큼 빠르게 편집되지는 않고 2월 초에 출간이 된단다.

나름 기자 10년쯤 하고 나면 월간지에 한국의 현대사나 정치뒷얘기에 대해서 장편의 글을 쓰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기대와 전혀 다르게, 어릴적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한국의 대중가요(케이팝)에 대해 계간지에 장편의 글을 기고하게 된 것이다. 머~, 제목도 유치찬란하다.

 우파미학 ‘소녀시대’와 좌파상업주의 ‘2NE1' 사이에서
 2011년 7월의 소녀시대 서울공연, 8월의 투애니원 첫 단독콘서트를 중심으로 _ 정호재(동아일보 편집국 기자)
 
글을 직접 쓴 사람 조차도 도대체 무슨 내용으로 200매를 채웠는지 기억도 안나는 상황이긴 한데, 여튼 어제와 그제 소녀시대의 <래터맨쇼>와 <켈리쇼>출연을 보면서 은근히 느끼는게 많아서 다시 블로그에 몇자를 적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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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적부터 언제나 미국방송에 등장했던 레터맨. 갑자기 그가 완벽한 할아버지로 보이기 시작했다.




















레터맨 쇼에 대해서 1970년대 생들을 할 얘기가 아주 많다. 좋든 싫든 내가 아는 미국 토크쇼의 거의 전부는 레터맨쇼에 기인한다. 물론 제리 르노가 그의 권력을 거의 다 빼앗아갔고 젊은 신진 토크쇼 MC들이 명멸해갔지만 1980년대부터 그의 토크쇼는 독보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토크쇼 무대가 머 그리 대단하겠냐만은 (실상은 위력적이다 아마도 SM 측에서도 그런 상징성과 후폭풍을 노리고 치밀하게 공략했음에 틀림없다고 추측해 본다) 어찌됐건 한국의 정치인도 아니고 경제인도 아니고 (영화인은 가끔 스쳐지나갔지만) 1989년 1991년생 꼬마 숙녀들이 이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아니 머~, 노벨 평화상도 타는 시대에, 미국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할아버지가 진행하는 토크쇼에서 대화도 몇마디 못하고 그저 늘상 부르던 노래 하나 부른 것이 무슨 대수냐?고 삐딱하게 말할 수가 있겠다. 그러나 1970년대생 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보이지 않는다.

엊그제 내가 존경하는 삼성경제연구소 박번순 박사님과 저녁을 하면서 "한류"에 대한 얘기가 나왔더랬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한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말씀드렸더니, 너무도 좋아하셨다.
  1. 한류란 대한민국 민주주의 성과의 후폭풍이다.
  2. 한류란 대한민국 20~30대 젊은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아시아 젊은이들에 충분히 보편적인 코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증거다.
  3. 아시아 환경에 비추어 아마도 상당히 위력적일 것이다.
"한류=민주주의론"은 상당히 퍼진 얘기라서 쉽게 동의를 하셨다. 정치와 사회의 민주주의가 대중문화 시장의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얘긴데, 여기에 몇가지를 더 붙이면 이렇다. 첫째는 방송 시스템의 권력교체다. 두번째는 공권력의 정당성 확보로 연예산업계가 상당히 투명해지며 많은 인재들이 제 뜻을 펼수 있게 됐다는 얘기도 빼먹으면 안된다. 상당수 후진국 방송계가 권력과 부정부패로 고통을 겪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섹시함'의 문제인데, 특히 여성이 섹시해 보이기 위해서는 '사회의 억압기제'와 내면의 '컴플렉스'에서 독립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후진국 여성은 절대로 섹시해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착취구조 속에서 젊은 여성의 아름다움은 편견의 늪에서 시달리게 된다.

비욘세나 에바그린의 섹시함은 한 문명권의 업적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여가수나 여배우들의 섹시함은 아마도 대한민국의 정치민주화와 페미니즘의 투쟁의 역사와 어떻게든 접점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컴플렉스를 떨친 상태에서라야 엔터테이너의 섹시함은 무대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팬들은 그들을 '빛나는 스타'로 가슴에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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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는 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그 것이 소녀시대가 미국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편견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소녀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어째서 아시아 젊은이들이 이런 철부지 소녀들을 사랑하는 지 이해를 해야 한다. 그들에게 안겨진 숙제일 수 있다.









소녀시대 얘기를 하려다가 옆길로 새어버렸다.

한류와 무관하게 경영학적인 관점으로도 <소녀시대>는 대단한 성공사례다. 특히 마케팅적으로 아주 위대한 롤 모델이다. 경영학 교과서에 들어갈만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아시아 시장을 먼저 장악하고 선진국(일본->유럽->미국)으로 진출한 첫 사례라는 점이다. 놀랍지 아니한가? 소녀시대는 한국과 동남아 시장에서 먼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차근차근 선진국 시장을 진출했다는 점이다. 과거에 문화시장은 전형적인 탑-다운 방식이었다면, 소녀시대는 바텀-업 방식으로 치고올라간 것이다. 거의 최초의 사례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현상이 발생했냐 하는거다. 왜 아시아 10대 소녀들이 그렇게 열광했던 <백스트리트 보이즈나> <듀란듀란>이나 <본조비>가 어째서 더 이상 탄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 두 번째는 과연 한국과 동남아 시장이 과거의 인식대로 '바텀(Bottom)'인가 하는 대목이다.

소녀시대의 두 번째 특징은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가 된 거의 최초의 사례라는 점이다. 물론, SNS를 통해 스타가 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단순하게 유명해 진게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거대 비즈니스를 벌여나가는 사례는 케이팝이 거의 독보적이다. 여튼, 소녀시대는  꽤나 아시아적인 현상이고 온라인 적인 기획상품임에는 틀림 없다는 얘기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레터맨쇼>의 무대는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부끄럽게 시작했지만, 1분이 지나면서는 완전히 빠져 버렸고, 마지막 끝나갈 때쯤에는 "완벽하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최고의 무대가 되어버렸다. 사실, 무대는 비좁았고 카메라 워킹은 엉성했으며, 라이브 밴드는 꽤 훌륭했지만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리듬에 여백이 없었다.

그런데, 아주 간단하게 그런 악조건을 극복해 버리고, 그냥 해치운 것이다.

그리고 <레터맨쇼> 30주년을 기념해 등장한 빌 머레이...<고스트 바즈터스>에 등장한 그는 어느새 60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레어맨 역시 70살의 할아버지가 됐다.

마치 동양에서 온 꼬마들은 진짜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굴리며 전 세계 팬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올린다. 물론, 미국 백인들은 "치어리더 같다" "저게 노래냐?" "머 저런 댄스가 있냐?"고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레터맨쇼>의 축 처진 분위기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목도하고야 말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아시아의 시대의 서막을 보았다고 하면, 나는 논리도 없는 개뻥장이가 되겠지만, 그냥 그런 뻥이라도 치고 싶은 밤인 것 같아 무리 한번 해봤다.

자세한 내용은 음악전문 무크지 <사운드> 제 4호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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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월스트리트저널 주말판에 등장한 소녀시대


Posted by hojai.


연휴 막바지에 처가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는데, 서가 한켠에 전집류 무더기가 눈에 띄었다. 무료한 탓에 찬찬히 살펴보니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집이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오홋~!! 이런 횡재가!!

전설속에나 나올법한 "한국 여생사에 기록될만한 책"이 장인어른 댁에 있다니...그리고 찬찬히 책을 훌어봤다. 개인의 체험담과 타지의 정보가 뒤엉켜 있는 수필의 모음이었다. 마치, 왕오천축국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정보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사진들은 맥락없이 흘뿌려져 있었으며 도대체 어떻게 여행을 했는지 여정 속에 그의 고충과 어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야말로 1950년대부터 세계일주 3회를 기록한 저자의 1인칭 시각의 오지탐험기였다.

울컥함이 밀려왔다. 김찬삼이란 이름은 너무나 자주 들어봤지만 그의 책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갓 독립한 나라의 지리선생님이 사비를 털어 시도한 세계일주....까무잡잡한 피부와 그의 애마인 오토바이 한대가 그 여정의 험난함과 고충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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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여행중이던 청년 김찬삼. 그는 59년부터 약 20년간 3차례의 세계일주를 통해 국내 최초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작성해 '국내 배낭혀행자 1호'로 기록됐다. 그의 여행은 하나의 전설이 됐고 후배 여행가들의 귀감이 됐다.






















그런 빛바랜 서책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신기한 대목도 많았다. 이를테면 1960년대 전세계의 타임머신 창고라고 해야할까?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캄보디아' 서술 대목이었는데, 놀랍게도 아주 평화로운 불교국가와 앙코르와트만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보통 현대의 캄보디아 여행자라면 '크메르루즈'군대의 잔인한 학정을 먼저 소개하기 마련인데 말이다.

아하~!! 이 책은 무려 크메르루즈의 '킬링필드'가 벌어지기 이전에 진행된 세계여행의 일부였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이 책의 가치가 더욱 높아 보였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자신의 사진과 함께 게재한 한편의 '문장'에 있었다.

"나와 남을 개선하려고 나라를 떠나는 사람은 철학자지만, 호기심이란 맹목적인 충격에 따라 이나라 저 나라를 다니는 자는 방랑자에 지나지 않는다" -----작자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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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삼 선생의 필생의 새김말. 여행자에게도 조국이 있고 근거지가 있으며 돌아가야할 마음의 고향이 있다는






















선생이 하고자 했던 뜻이 무언지를 곰곰히 생각해 봤다. 일주일 정도만 여행을 해도 몸이 피곤해 지고 인생에 회의가 오기 마련인데, 1년 이상씩 낯선 땅에서 잠을 자며 끊임없이 현장을 기록하고 자기가 본 낯선 문물을 반추하는 것이란 얼마나 힘든 삶이던가?

그리고 그런 여행자 가운데서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랑자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수도 없이 보았다. 호기심에 이끌려 해외로 나갔다가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선생도, 수없이 그런 유혹을 겪었을 것이고 다시근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있고, 나의 여정에는 특정한 목표가 있다고 말이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나도 감히 그와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해외를 싸돌아다니면서 수도없는 유혹과 정착에 대한 나약한 마음을 갖기도 한다.

선생은 자신의 책에서 여행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나와 남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철학자의 자세를 견지하겠다, 그저 호기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그리고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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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찬삼 선생~

























그러고 보니 2년전 나도 그에 대한 책 관련 기사를 하나 썼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여튼, 그는 위대한 여행자였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처가집에 갈 때 심심하지 않을 일이 생겼다.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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