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별 영양가 없는 얘기가 길어졌다.
(이 앞전에 했던 얘기는 말이 되는 수준으로 재빨리 고쳐놓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중국 광저우에 대한 얘기로 들어가 보자.
광저우에 대한 첫번째 얘기거리는, 중산대학에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중산대학, 중국인들은 그냥 줄여서 중대(중국말로는 쭝따~)라고 부르는 바로 그 대학이다.
잠깐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대학 순위 평가 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中国管理科学研究院이 평가한 2006년 중국 대학 순위 자료는 다음과 같다.
<대학별 평가 결과>
1. 淸華大, 2. 北京大, 3. 浙江大, 5.上海交通大, 6.復旦大, 6. 南京大華, 7. 華中科技大, 8. 武漢大, 9. 吉林大, 10. 中山大, 11. 四川大, 12. 西安交通大, 13. 中國科技大,
칭화대, 북경대, 상해 교통대, 복단대 이 5개 대학이 지역에 상관 없이 최상위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면, 나머지 대학들은 대개 그 지역의 최고 명문을 자랑하는 대학임을 알 수 있다. 자 중국 10위 대학이 바로 중산대학이 되겠다. 물론 광둥성 최고의 명문대학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산대학? 이름이 특이한데...?"
중산대학을 처음찾아가던 3월2일 아침은 학기초였기 때문인지 학교 앞이 북적거렸다. 특이한 중국식 국수를 6위엔(800원정도)에 사먹고 중산대학 구경에 나섰다.
중산대학에 가기 전에 들었던 내용은 단 하나... 유명한 사람이 세웠다는 것이다.
바로 그게 누굴까. 그렇다.
손문 ~ 쑨원 선생 되겠다. 중산은 손 선생의 아호가 되겠다.

박학 : 널리 배우고
심문: 살펴 질문하고
신사: 신중하게 생각하고
명변: 똑바로 말하고
O행: 재빨리(?) 행동해라...(아~ 요즘 내 한자실력이 딸린다. 누가 좀 도와주소)
자..... 근대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해왔던 쑨원이 직접 세운 대학이 바로 중산 대학이 되겠다. 이 중산 대학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있다고 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세계에 위대한 사람은 많지 않다. 가령 있다고 해도 위대한 사람이 사람이 세운학교는 많지 않다."
중산대학의 정문앞에 쓰여있는 말이다. 한국사람에겐 생소할지 몰라도 이 위대한 사람이 바로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손중산(손문)"선생이다.

예상한 대로 중산대학 교내에는 청나라를 몰락시키고 근대적 국가인 중화민국을 건설할 당시의 위인들의 동상이 차례대로 세워져 있었다. 가만히 동상을 들여다 보니, 나 스스로 근대 중국에 대한 무지함에 새삼 놀라게 됐다.
손문의 3민주의, 캉유웨이, 신해혁명, 국공합작, 조선의 독립운동가 지원.....이정도 단어들이 살짝 머리를 스쳐갔지만 도대체 왜 쑨원 선생이 중국인들의 국부로 추앙받았는지에 대한 기억은 나지 못했다. 음....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는 아시아 근대사에 대한 교육이 너무 많이 부족했다. 이 점은 좀 고쳤으면 하는 바램이 생긴다.
바로가기 : 네이버 백과사전 쑨원의 일생 요약

<쑨 선생의 클로즈업 표정>
이 중산대학과 쑨 선생은 꽤 많은 연관을 맺고 있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서 확인 할 수 있었다.
1912년-중화민국을 세우고 이후 그가 죽던 해인 26년까지 14년간은 그야말로 치열한 내전을 치뤄야 했다.
"혁명은 완성되지 못했다"고 외친 까닭은 바로 서구 열강들과 일본과 손잡은 군벌들 때문이었다. 그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 공산당과 손을 잡고 말 그대로 끊없는 전쟁을 치룬다.
그런 그가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 없는 이 광저우에 대학을 세운 이유 또한 그의 삼민주의에 기댄 바가 크기 때문이란다.
창립당시의 학교명은 광동대학으로 불리다가 1926년 손중산 선생이 죽은 다음에 중산선생을 기념해서 중산대학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근대 중국을 위한 그랜드 디자인이 어떠했는지를 잘 알게 하는 물증이 바로 이 대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1924년에 종합대학을 세웠다면 한국도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세우겠다는 운동이 곳곳에서 일기 시작할 때였다고 본다.
쑨 선생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하기로 하고, 웹 서핑을 하던 도중에 흥미로운 사실을 속속발견하게 됐다. 바로 저항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육사 선생 얘기다.

<이육사 선생> 바로가기 : 그는 왜 투사가 됐나?
그의 기록을 보면 그는 베이징(北京)에서 대학에 다녔지만 1926년 후학기부터 1927년 전학기까지 광뚱(廣東)의 중산 대학(中山大學)을 다녔다고 나온다. 그 이유로 이 무렵, 광뚱은 혁명적 분위기가 충만하였고, 한국 독립 지사가 대거 몰려드는 도시여서, 이 곳에서 육사는 여러 독립 지사들을 만났고, 더욱 깊숙이 독립 운동에 관여했기 때문이란다.
이 선생의 기록을 조금 더 살펴보니 그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북경을 오가며 선진 문물을 접하고 결국 난징에서 무장투쟁을 위해 군사학교를 다녔다는 기록을 보게 됐다. 그가 북경의 한 감옥에서 옥사한게 44년이니, 그 당시 한국 독립운동가들은 조선에서 만주 다시 북경을 거쳐 광저우 다시 일본을 오다니는 국제적 사회주의운동 혹은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970년대에 태어난 우리 세대보다 더욱 더 국제적인 활동들을 벌이고, 아시아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셨음에도.... 나는 그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중산대학에 찾아가서도 겨우 쑨원 동상이나 쳐다보고 온 것 이다.
무지로소이다. 무지.... 갑자기, '김산의 아리랑'에서 느꼈던 감동이 떠오른다. 겨우 60년 전의 일에 불과한데, 무슨 고대사를 뒤적이는 느낌이다. 감이 너무 멀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후대인들의 무관심인지.
갑자기 중산대학의 혁명적인 분위기가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우리의 80년대와 비슷했을까? 아님 30년대와 비슷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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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 IT 2006/03/18 10:43
#1. 이 선생의 기록을 조금 더 살펴보니 그는 일본에서 공부하고, 북경을 오가며 선진 문물을 접하고 결국 난징에서 무장투쟁을 위해 군사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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