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3일. 자 이제는 제대로 광저우를 돌아볼 때닷.
광저우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타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터.

광저우에는 1-2-3호선이 운행되고 있다.
현재 4-5-6-7 호선이 땅 속에서 공사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심하게 놀래버렸다. 급속한 중국의 현대화에 놀란 것도 이유이긴 한데, 더 놀랜 사실은 4~7호선이 동시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그것도 3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대 도시인 광저우에서 마구 땅을 헤집고 공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에구.... 머.... 그런 것까지 세밀하게 생각할 여유는 없겠지. (흠 남의 성급함을 좋아하다니..)
<한 눈에 봐도 깔끔해 보이는 광저우 지하철 모습>

대단하다. 중국. 우리나라가 이제 설치한 스크린도어까지 이미 다 설치돼어 있었다.
광저우의 인프라는 거의 홍콩급에 올라와 있다. ㅋㅋㅋ. 물론 다 허상이긴 하지만.(이유는 나중에 설명하고)
광저우 지하철은 세계 기네스 북에 2건이나 기재돼 있다고 한다.
1호선은, 사상 최단기간 건설된 지하철이고
2호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지하철이라는 설명이다. 와우.

중국 근대화를 꿈꿨던, 중국의 선열들이 기뻐할만한 소식일지는.... 장담 못하겠다.

<광저우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중산기념관. 지하철역 기념관역에서 내리면 바로...다>

중산기념관에 왔다. 입장료가 10위엔. 비싼 가격은 아니다.  
중산. 쑨원이란 인물은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가. 과연 그는 위대한 인물이 맞는가? 도대체 1900년대 초엽에 중국에서는 무슨일들이 벌어졌는가? 모든 것이 의문이다.


<손중산 선생을 배경으로 셀프 컷 한장>


상당히 많은 관광객,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들이 내 옆에서 중산 선생 동상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백범 김구 선생이나 안창호 선생과 같은 카리스마와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 인물이다. 물론 우리의 독립지사 가운데는 일제에 친일한 사람이 많아서 결국은 이승만 같은 친미파가 득세하고 말았지만 중국의 혁명가는 죽는 날까지 혁명과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죽는 행운을 누렸다. 물론, 그는 국민당을 세우고 실제 권력을 잡아보기도 했다.

음................. 이점은 많이 부럽다.

天下爲公(천하위공)

삼민주의만 알고 있는 나에게 다가온 천 문장은 바로 '천하위공'이라는 낯선 문구.

저 5각형의 중산기념관에도 자랑스럽게 정 중앙에 붙어 있는 문구가 되겠다.

도대체 저게 무슨 뜻인가?

우선 1905년에 발표된 삼민주란, 잘 아시다 시피-민족, 민권, 민생을 말한다.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틈바귀에 끼인 중국인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민(民)'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손문선생이다.

적어도 삼민주의가, 간판에 써있을 줄 알았지만 '천하위공'이란 간판에는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지만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된다.

"세상은 누구 개인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다"

천하위공의 사상은 민주주의로 읽히기도 하고, 공산주의로도 읽히기도 하지만, 1800년대 후반, 그가 이 개념을 널리 공표했을 당시는 천자 중심의 봉건주의나 강대국 중심의 제국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세련된 사상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삼민주의도 여기서 맥이 닿아 있겠고....

이 천하위공 사상을 중심으로 손문의 일생을 풀어가면, 그는 참 위대한 정치가였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결국 군벌들과의 전쟁에서 심각하게 밀리기도 했지만 같은 민족주의자들은 공산주의와 손을 잡고 어찌됐건 중국을 거의 완전한 형태로 지켜낼 수 있었다.

만일 손 선생이 없었다면, 1950년대의 중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도, 중국은 누더기처럼 세계 열강들의 통치를 받는 기묘한 식민지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북쪽은 일본과 러시아가 분할하고, 남쪽은 영국과 프랑스가, 중부는 미국이 진주하는 해괴망측한 대륙이 돼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왜 중국인들이 손문 선생을 국부와 같이 추앙하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념관에 들어가서 본 선생의 단아한 서예글씨>


물론 서예로 일가를 이룬 글씨체는 아니다.
아마도 해외유랑 생활을 많이 하고 서구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 명필은 아닌 셈이다. ^^;;;;;
(제가 서예를 좀 볼 줄 압니다)

번역하면 - 세계조류에 대해서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고
씌여있다.

그의 사상을 일거에 캐취하기에는 좀 약한 문구다. 세계사조의 흐름을 민주주의와 민족주으로 본 것일까?




손문의 일생을 들여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애당초 의사였다. 그는 홍콩과 마카오에서 젋은 시절을 의사로 보냈다.
그가 태어난 광저우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홍콩과 맞닿아 있는 동네다.
때문에 근대적 문물과 사조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던 곳이다.

우선 손문이 어떻게 근대적 사고를 갖게 됐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하와이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는데,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역시 그가 의학 교육을 받았다는 것. 의학이란 가장 근대적인 과학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상대하는 과학인 셈이다.

그래서 근대사를 살펴보면 의사 중에 혁명가가 적지 않다.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역시도 좋은 집안의 의사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합리적인 사고를 배우고, 이후 비현실적인 세상을 접하게 되면 환부에 댔던 메스를 직접 사회에 적용하고픈 욕망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손문 기념관에서 주은래 선생이 했던 말이라는데....>

손문 기념관에 와보지 않은 중국의 주요한 인사는 거의 없다고한다.
일종의 필수 방문 코스인 셈이다. 공산당과는 약간 거리가 있을것이라는 나의 편견은 아주 쉽게 무너져 내려 버렸다.

- 손중산 선생은 중국의 위대한 인물이고, 역사상 ....어쩌구 어쩌구 한 인물이라는 설명이다.

살짝 광저우와 손문 선생을 되짚어 봤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1800년대 후반 봉건적인 청나라에 가장 먼저 유럽의 문물이 들어온 곳이 바로 이곳 광저우-홍콩반도라면, 다시 100년이 지난 1900년대 후반에 또 다시 서구문물이 들어오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중국의 힘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장소로 탈바꿈 하고 있다. 광저우는 어느새 세계의 무역과 물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손 중산 선생의 꿈은 과연 이 땅에서 실현된 것일까?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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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K 2006/07/23 05:12  Modify/Delete  Reply  Address

    천하위공이란 말 자체는 예기에 나오는 말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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