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년간 한국사회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몇 시간전 한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배 축하해요?"
"왜?" (호자이)
"오늘 법원 판결이 있었어요. 출교자들 학교로 돌아올 수 있게 됐어요."
흐음. 얼결에 지난 2년전 출교사태에 휘말렸다. 솔직하게 말해 휘말렸다기 보다는 살짝 숟가락 하나 얹은 것 뿐이었다. 그 덕에 조금 애정을 갖고 고대출교사태를 지켜볼 수 있었다. 물론 사건의 팩트라던지 어느쪽이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그런 것들은 부질없어져버렸다.
지난주에 경험한 조금은 쓸쓸한 얘기를 전해드린다. 어윤대 전 총장이 우리후배들에게 남긴 유산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사건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운 부름이라면 무엇보다 후배들의 호출이다. 대학시절 한 언론사에서 일했고, 이후에도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인지 후배들의 부름이 잦은 편이다. 정확하게 말해, 2001년 이전에는 이 같은 호출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대학언론사가 선배 언론인을 불러서 '강의요청'을 해준다는 것은 90년대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90년대초까지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대였기 때문이었다.
"감히, 졸업생이 대학생을 가르치려 한단 말인가?"
때문에 선배와 후배의 교류는 '창립 OO주년 기념회' '동인회' 이런 방식으로 이뤄졌을 뿐이고, 교육은 철처하게 '4학년->3학년->2학년-1학년'이란 위계질서를 통해서만 가능할 뿐이었다. 졸업생이 후배들에게 훈수를 둔다는 것은, 그것도 대학언론사에서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교육 시스템이 90년대 후반에 망가진 모양이다. 2000년 초반이 되자 전통적으로 계승되던 의식들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노래, 구호, 심지어는 편집장 마저 쉽게 뽑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물론 학생들은 험난한 취업 전선으로 몰려간 것이다. 어느 때는 선배의 명령에 항거한 후배가 의자를 집어 던지며 "이런 일 너나 하라"고하며 뛰쳐나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여타 운동권 써클의 상황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2003년쯤되니 후배들로부터 자주 연락이 왔다. 이를테면 "언론사 선배들이 무언가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기자나 PD들이 한두명이 아니었으니 꽤 많은 선배들이 강의에 불려나갔다. 밥도 사고, 술도 사고 언론에 대한 얘기도 해주고, 심지어는 언론사에 합격하는 길, 무슨 이런 강의까지 했었나 보다.
나 역시도, 업계에서 비슷한 밥을 먹고 있기 때문에 지난 4~5년간 꾸준하게 불려다녔다. 물론 그네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강의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80년대 생 아이들의 사고구조가 궁금했을 뿐이었고, 그네들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조직을 꾸려나가는 지 궁금할 뿐이었다.
바로 얼마전에 그런 강의(?)를 또 다시 하고 왔다. 이제는 88년생들이 대학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네들에게 또 한번의 판에 박힌 강의, "대학언론 기자는 무엇이고, 기자는 무엇이고, 언론이란 무엇이다"라는 조금 내가 해서는 안될 주제를 소크라테스 강의식으로 썰을 풀고 있었나 보다.
대학 1학년 생들은 객관적으로 매우 출중했다.
논술, 토론, 물론 출중한 외국어 실력에,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꿈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외국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아예 노골적으로 '고위공직자'를 희망하는 이도 있었다.(공무원이면 공무원이지, 고위공직자는 또 멀까?) 자기 세대에 걸맞는 다양한 꿈들이 펼쳐져 조금은 흐뭇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와 '부조리'에 대처하는 대목에서는 깜짝 놀래고 말았다.
"선배님, 대학학보사기자와 기자가 머가 다른거예요?"
"기자라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는 같은 거 아닐까요?"(호자이)
"그럼 선배는, 선배 회사의 비리를 고발할 수 있나요?"
"하하. 글쎄요. 쉽지 않겠죠....(깨갱)"
"거봐요. 우리도 마찬가지라니까요. 학내 문제점을 고발하기 쉽지 않아요. 우리는 학생이잖아요."
"허허. 학생이기 전에 기자이잖아요. 진실을 보도해야죠."(호자이)
"그래요. 진실을 보도해야죠. 그런데 좀 두려워요."
"물론 그렇죠. 그런데 머가 두렵나요?"
"학교에서 짤릴 것 같아 두려워요.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허걱. 새상에 이럴 수가. 대학교 1학년 생들 입에서, 학교에서 짤릴 게 두렵다는 얘기가 튀어 나왔다. 세상을 다 품에 안아도 부족할 신입생들 입에서 튀어나와서는 안될 말인데.... 과연 이것이 '출교(해고)'라는 사건의 후폭풍이란 말인가? 어윤대의 유산이란 과연 이런 것이었구나.. "허허. 짤리다뇨. 학생을 짜르긴 누가 짤라요"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나는 더 이상의 말을 할 수 없었다.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차 술자리, 영어가 아주 뛰어나다는 한 착하게 생긴 1학년생에게 출교 사태에 대해서 한마디 코멘트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 순진해 보이는 후배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은 지나치게 강경했다.
"그런 새끼들은 다 쫓겨나도 싸요. 패륜아들 아네요!"
"동감"
"(허걱) 이봐, 그 친구들은 너네들보다 3~4년 위 선배들이라고, 심하잖아!"(호자이)
"개네들이 선배는 무슨 선배에요? 이미 퇴출된 애들인데, 선배가 아니죠."
허걱. 그랬다. 이미 세상은 상당부분 치유되기 힘들 정도로 금이 가 있었다. 연대라던지, 정의라던지 하는 고루한 단어들은 이미 시궁창에 박힌 것이다. 우리편과 네편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더 좋은, 더 힘쎈 우리편을 만들기 위해 대학생들은 오늘도 경쟁하고 협력해 나간다. 물론 회사에 있는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이번 대선에서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물었다.
---MB가 대부분, 문국현이 1명 허경영이 1명 있었다. 많이 허탈했다---
어윤대의 치적은 화려하다. 그리고 그 효과 역시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조금은 무섭다. 내가 살아갈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내가 뒤쳐진 것일까?
PS. 참고로 이 글은 후배님들에 대한 폄하가 절대 아니고, 내 자신에 대한 실망, 세상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고자 하는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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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네들 이제 앞으로 뭐 해먹고 살까? 그 공백기간을 훗날 뭐라 설명해야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진짜 잃어버린 10년이군요. 너무나 많은것을 잃어버린..
다음에 강의할 때 나한테도 알려줘요...나도 수강 좀 합시다...진짜로...
저도 이제야 막 학교를 벗어나 사회에 들어온 사람인데 무섭네요. 출교의 경험이란게 무시무시한 거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