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가 무거워졌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너는 그러지 마라, 발로 뛰어라고 할때 자주 씁니다.
제가 요즘 딱 그런 꼴입니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현장에 나가보려고 발버둥쳤다면,
요즘에는 어떻게든 현장에서 멀어지려 애를 씁니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물론 지금도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정권의 부도덕성'과 '시민의 목숨이 정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왠지 그 속에 들어가 취재한다는 게 두렵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겁쟁이가 다 된거죠.

그러다보니 서울 한복판에서 벌여졌다는 용산참사 현장 역시 상당기간 미처 챙기지 못했습니다.
죄스러운 마음에 겨우 그 장소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수 년간을 지나다닌 길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장에 도착하니 낯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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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대로 참사가 벌어진 현장은 한강로 한 가운데 입니다. 용산 국제빌딩 바로 옆 블록입니다. 이 정도의 황금상권에, 대로변이기 때문에 '속전속결'을 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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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고블록은 전경차에 의해 막힌 상태였습니다. 건물 안 역시 경찰이 지키고 서 있더군요. 그래서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고 추모의 기념물들을 남긴 상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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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일종의 만장이 인상적입니다. 그 너머로 세계일보 간판이 보입니다. 저 골목의 끝에는 세계일보가 자리하고 있었죠. 그 주자창 부지는 <시티파크>라는 최고급 주상복합이 자리잡았습니다. 세계일보 역시 땅을 주고 시티파크 몇채를 회사와 임원들이 챙겼다가 내부적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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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용산의 신화 <시티파크> 역시 문제는 땅으로 대박나는 사회인 듯 합니다. 이윤이 없으면 사업이 시작되지 않겠지만, 적절한 이윤을 사회적으로 합의한다는 것 역시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자본주의와 부동산야 말로, 헨리조지가 역설했던 '진보의 역설'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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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박힌 벽. 이제 저 안에서 벌어진 일들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쉽게 잊혀지리라 생각합니다. 철거민이 죽은 것이 아니라 시민이 죽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해 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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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한 상가 가림박은 예술의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몇년전 농민시위 참사와 관련해 사과한 대목이 떠오릅니다.
"공권력은 마치 날카로운 칼과 같기 때문에 소중하고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정부의 권력자들은 시민들에게 준법을 요구하고 강력한 법치를 선언했습니다. 그 칼날은 언젠가 정확하게 그 위정자들에게 향하리라는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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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제 지인 하나가 인근 국제빌딩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밥 먹으러 갔던 식당 주인과 시계방 주인이 죽었다, 말 그대로 우리 옆에서 살던 평범한 시민이었는데, 왜 그들이 이렇게 개죽음을 당해야 했는지...단순히 폭력 시위꾼의 죽음이라고 폄훼할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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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현장 바로 옆 한강로 대로변에 나붙은 정권퇴진 구호. 권력자들에게 이런 저항은 그저 '대업를 이루기 위한 자그마한 충돌'로 인식되겠죠.
영원한 정치학의 근본 문제인 "도대체 국가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국민 개개인의 행복과 권리를 보호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니면 재개발을 통한 건설사와 금융권의 빠른 투자금 회수가 전체 국민의 민복을 증진시킬 것인가? 국가란 아무리 태생이 폭력적이라도 해도 적어도 국가가 국민을 위하는 척, 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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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아니 용산 지역 상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난로를 쬐고 계시더군요. 그들의 미래는 거의 정해졌는 지 쓸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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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한 천막 안에 합동 분양소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저를 발견하고 반가운 척을 해주시더군요.

"위로 하로 왔소? 내가 빨리 가서 향 가져 올테니 조금만 기다리소"

"아닙니다. 그냥 향 없이 묵념만 하고 가겠습니다"(호자이)

"그래요. 참으로 고맙소. 와준것만 해도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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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생각없이 갔다가 막상 저런 반응을 듣게 되자 저도 울컥해 지더군요. 얼마나 복받쳤을까, 위로를 갈망했을까? 따지고 보면 정권이 아무런 잘못이 없다면 총리나 대통령이 이 자리에 나왔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 저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조금 더 잘 살아보겠다고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고 실제 투표했을 것 아닙니까. 정치란 무릇 약자를 보듬어 안아주는 척이라도 하는 게 정치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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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밖에는 근조 리본과 한 권의 방명록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니 또 한번 슬퍼집니다.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독해져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철저하게 독해지지 않는다면, 약점을 보인다면, 누군가가 와서 처절하게 짓밟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야만적 행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공동체를 꾸리고 교육을 하고, 교회를 다니는데...
그런 모든 노력이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슬프게 합니다.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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