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기' 요녕성 여행기---<2> 대련을 하루만에 초고속으로



아침에 일어나보니 날짜가 3월1일로 바뀌어 있다.


낯선 땅에서의 아침.

3성급 호텔이란 말에 일말의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역시나 별로였다.

사실, 중국 여행은 무조건 '민박'을 추천한다.

3성급 호텔이 하루 200위안(최저가)이라면 민박은 100위안이라는 싼 가격에

밥과 한글 인터넷이 서비스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역 정보를 잘아는 사람이 한 방에 여행지를 요약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 조언자가 있다는 사실은 여행자에게 큰 힘이 된다.


호텔은 그런 장점이 전무하다.


그럼에도 호텔을 예약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비자' 때문이었다.

요즘 중국 비자 정책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호텔 예약은 필수가 됐다.

어찌됐건 민박을 가지 못해서 억울한 하루였다.

 

20층 호텔방에서 바라본 대련항 풍광. 앞쪽에 근대 건축물 군락이 보인다.

멀리 STX라는 로고를 단 배가 보이길래 검색해 보니, 대련에 STX 조선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다. -_-

맙소사. 아무 준비 없이 대련에 왔다는 얘기다.


무조건 아침식사를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달려가보니....한 마디로 절망적이다.

난생 처음보는 음식들, 그것도 겨우 몇 가지 존재할 뿐이었다.

이 곳이 동북아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절대 광동이나 베이징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다.

오로지 소금으로 간을 한 밑반찬들이 너무 낯설었다.

결국 죽과 계랑과 빵조각 몇 개를 간신히 쑤셔 넣고 호텔을 나서야 했다.


**** 1차 목표는 내일 오전에 출발하는, 심양행 기차표를 사는 일.


문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는 점.

얼마나 자주 있는지, 몇 시간이나 걸리는지, 어떤 종류의 기차가 어느 정도 가격인지...

물론 없다면 버스를 타고 가면 될 일.

큰 걱정은 안했지만 민박에서 정보를 구하지 못하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다롄 시내를 달리는 전차. 구식 전차와 신식 전차가 같이 달리고 있었다.

다롄은 인근 뤼순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좀 독특한 역사의 도시다.

청나라가 몰락하고 이후 러시아-국민당-일본군-공산당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기 때문이다.


다롄을 현대화 시킨 장본인은 사실 러시아와 일본이다.

'북방의 홍콩'이란 수식어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현재도 다롄은 일본과 러시아 자본이 가장 활발하게 진출한 땅이고,

이를 근거로 동북아 금융과 IT의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다.


어렵사리 다롄역에 도착했다.


머리 속에는 어설픈 중국어가 맴돈다.

"밍티엔~(내일), 샹우~(오전), 취 선양(~심양행), 이 거런~(한 명)..."


줄을 서서 기다려 머리속에 입력한 말을 죽 쏙아내니 직원이 한 마디 덧붙인다.

시간어쩌구, 좌석 어쩌구...대충 답하니 다음과 같은 표를 내준다.

선양 북역에 도착하는 잉쭈어 표(딱딱한 의자)였다.

무언가 다른 대안을 찾고 싶었지만 중국어가 짧아서 패스.

이럴 땐 정말 말 못하는 고통이 적지 않다.

중국 기차 여행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은 너무 삭막하지만, 기차에 타게 되면

중국인들의 삶과 표정을 어느정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필자는 2006년도 칭짱철도가 개통된 그 다음주에

우연(?)하게 베이징에서 라싸까지 1600km나 되는 철도에 탑승해보기도 했다.
중국 기차 여행은 언제나 특별한 기억을 안겼다.

물론 지금 같은 상황에선, 가격적 요인이 더 클듯 싶다.

사실 편안한 침대 차를 사고 싶었더랬다.

 

대련역 앞에서 바라본 시내풍경.


중국은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로, 관광객을 압도하는 근사한 고층 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누군가는 우리나라에 "랜드마크가 없다"며 중국의 빠른 근대화 속도를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층 빌딩이 즐비한 것은 도시의 질적인 발전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사실이 명확하다.


무엇보다, 고층 빌딩 주변이 거의 죽은 공간이된다는 점이다.

도시가 고루발달하고 소통되는 공간이 아니라, 유리로 만든 벽이 주변을 지배하는 묘한 구조가 되버린다.

특히 중국이 그런 경향이 심한데, 고층빌딩과 관광객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저 유리로 덮힌 콘크리트 더미일 뿐이라는 점.


저 빌딩의 공실률이 얼마인지, 가격이 얼마인지는 모른다.

대신 확실한 점은, 마치 "우린 현대화된 도시요"라는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실제 빌딩 주변은 너무도 황량했고, 쓸쓸했다.

지저분한 쓰레기만 거친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대신 다롄의 매력이란 바로 광장의 존재다. ----중산광장----의 일부.


어제 만난 잭씨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그거 아세요? 다롄에는 광장이 무려 80여개나 있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러시아 때문인데요.

처음 이 도시를 설계한 이들이 러시아 기술자들이었데요.

그래서 혁명정신을 발휘해서 교차로마다 광장을 만든 거죠.

중산광장, 5.1광장, 인민광장, 우의광장...끝도 없이 광장이 펼쳐지는데.

신기한 건 다 옛이름은 러시아 이름의 광장이었다는 점이죠.

인민광장의 옛 이름은 스탈린광장이었어요."


19세기 말 이후 러시아는 남만주의 부동항인 다롄을 노렸다.

서태후가 선양-다롄 철도 부설권을 러시아에게 넘겼다던가?

그러나 20세기초 일본에 패퇴하면서 러시아는 물러가고 일본이 다롄을 접수했다.


항구도시인 만큼 다롄은 금융업이 발달해 있었다.

중산광장을 둘러싼 건물은 모두 근대화 초기 은행 건물이었는데,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대련시 중요보호건축물-관동은행 구지

일본침략시기, 일본조선은행 다롄지점 건물이라는 표지가 보인다.

괜시리 조선은행이라기에 마음이 혹해 사진 한장 찍어놨다.


즐거워야할 점심시간이지만 그리 즐겁지는 않다.

여행지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함께 식사해야 하는 법이거늘,

불행히도 다롄엔 더 이상 아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날씨는 또 얼마나 추웠던지.

추위를 피하기 위해 한 쇼핑센터 지하로 들어가다.

덮밥 12위안짜리를 하나 시켰는데, 역시 또 실패다.


이번에는 전철을 타고 도시 시내를 관통해 보기로 했다.

1차 목표는 런민광장이다.

중산광장이 경제중심지라면 런민광장은 정치 중심지다.

중국 공산당 관련 기관은 모두 런민광장에 모여있다고 보면 맞다.

인민광장 서쪽에 자리잡은 정치국? 당지부?


헌데 매우 익숙한 모습이다.

한 눈에 일본의 동경대학과 동숭동의 서울대학과의 유사성을 찾아냈다.

바로 일제시대 건축양식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바로 광장은 러시아가 만들었지만, 건축물은 일본이 만들었다는 말을 확인한 셈이 됐다.

저런 노골적인 일본 건축물을 중국 공산당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사실도 참으로 흥미롭다.

참으로 대인배 아닌가? 혹은 실용주의?



런민광장 반대편에 자리잡은 또 다른 일제시대 건물.

멀리서 보이지만 일본 국회 모습을 상당부분 닮아 있다.
이 또한 일제시대 건물이다.

다가가서 보니, 서울시청과 예전 조선 총독부 건축 양식이 자연스레 오버랩 된다.


머 내가 건축전문가는 아니기에 패스.

광장 주변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문제는 날씨였다.


이날 날씨가 영하 4도였다.

위도상으로 다롄은 신의주 급이다.

해안도시라 내륙지방보다 따뜻하다곤 하지만 역시 북쪽은 북쪽이었다.



다롄을 여행하기 위한 완전무장.

카메라도 두 대나 들고 갔지만, DSLR은 가방에서 개점 휴업하고 있었다.

너무도 추워서 사진 찍을 여유조차 없었다.

3월 초에도 영하권의 추위에 칼바람이라면, 12월이나 1월의 추위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싱하이 광장/공원으로 이동.

이름 그대로 별처럼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공원이란다.

다롄을 말하는 사람들은 백이면 백, 모두 "싱하에 공원에 가봤어요?"라고 물었다.


인천의 월미도 공원 정도 되는 포스를 지닌 곳일까?


부푼 희망을 안고 그리로 향했다.


싱하이 공원은 다롄 최남단, 그러니까 여순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해안가를 지칭했다.


공원에 접어드니, 바다가 옥색을 띄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봐온 그 어느 바다보다 푸르른 바다였다.

동해바다가 짙푸른 청색이라면,

이 바다는 보다 가볍지만 밝은 빝을 발하고 있었다.


아......그러고 보니 이 바다는 '발해'구나.



발해. 중국사람들은 보하이로 읽는다.


발해/발해만이란, 황해 북쪽 중국과 북한에 이르는 깊숙한 만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고구려 유민이 말갈족과 함께 만든 나라의 국호로 더 유명한 이름이다.


발해....

한 재야사학자는 발해를 이렇게 풀이했다.


"발해만 지역은 고조선의 주활동무대에요. 그래서 발해의 어원도 저는 한국어에서 찾습니다.

원래 '밝은 바다'라는 뜻이에요. 밝다가 발해의 어원인거죠."


그 사학자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발해를 처음 만져봤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특별해졌다.


싱하이 공원 인근의 아파트 단지.

중국의 아파트 규모는 한국에 비해 너무나 거대한 규모다.

나중에 아파트가 관리가 안되서 흉물이 되면 어쩌나 할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오다.

PC방에 갔고,

이어 간식을 사고,

남은 돈으로 다시 우육면을 사먹다.

내일은 선양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오늘은 푹 쉬어야 겠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호텔 내부.

호텔에서 TV를 보면서 외로운 밤을 지새우다.


흥미로운 점은 TV채널이 30여개 가까이 됐는데,

중국TV 20개+러시아  TV3개 + 일본TV 3개 +한국 TV 2개 였다는 점이다.

다롄이 흥미로운 점은 바로 4개국가, 아니 북한까지 더해 5개 국가가 엉켜 있는 지정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땅이라는 점이다.


거리에서 간식으로 사온 딸기를 세척해 맥주 안주로 삼다.

밖이 너무 추워 따로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중국의 TV는 너무도 엄숙했다.

중국 최대의 유흥도시라는 다롄에 와서,

호텔방에 누워 TV와 고작 맥주 한캔과 딸기를 안주삼아 시간을 보내자니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PS_____________19금(?) 뒷얘기


여담인데......^^;


맥주를 마시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삼십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게 황망하게 전화를 받게 됐다.

수화기 속의 여성은 내게 이렇게 물었다.


"Message OK?"


잠결에 당황한 나는 그려를 프론트 직원으로 생각했다.

"What?........ message for me?" 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한번 내게 이렇게 주입시켰다.


"No Message, Massage.........OK?"


놀란 나는 순간 전화를 끊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노를 연발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문제는 전화를 끊고 제 정신이 찾아왔다는 것.

이후 난 새벽 세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가격이라도 한 번 물어볼걸 하는 후회감에 말이다. ^^;


아. 중국에서도 이런 영업이 존재하는구나, 라고 배운(?) 계기가 됐다.


그리고 홀로 누워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는 마사지다, 라는 테제를 떠올렸다.


머냐 이 뜬금없음은?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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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방문자 2009/03/23 10:38  Modify/Delete  Reply  Address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3. 김성구 2009/03/25 10:30  Modify/Delete  Reply  Address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근데 마사지는 순수한 마사지겠죠.
    약 50원정도일 걸요.

    • hojai 2009/03/25 13:07  Modify/Delete  Address

      아하하 ^^; 네..머 웃자고 뜬 내용입니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제가 곤란하잖아요.

  4. 홍선생 2009/03/29 12:03  Modify/Delete  Reply  Address

    "고층빌딩은 죽은 공간만 만들어 낸다." 100% 공감...
    오세훈과 이명박의 야만적인 서울시 재개발을 막아야 할텐데...

    청진동은 이미 없어졌고.. 무교동, 회현동도 재개발 들어갔고...
    피맛골도 곧 없어지겠죠...

    뤼미에르인지 모시깽이인지에 새로 문을 연 청진동 해장국을 먹고 절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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