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롄에서 선양까지 7시간 기차여행



사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심양(선양)이다.

서울에서 곧장 심양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까 했지만,

그것은 너무 단순해서 재미가 없다. 그래서 택한 대련이었다.

지도에서 보듯이 대련에서 심양까지는 약 480km. 기차로는 얼마나 걸릴까?



구글 맵스에서 찾아본 요녕성 개략도. 요동반도 끄트머리에 자리한 도시가 바로 다롄.

그리고 요녕성의 중심이 바로 심양이다.

심양은 남만주의 중심도시다. 만주족(여진족)의 수도가 바로 이 심양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포인트다.

중국과 한반도의 중간도시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인삼무역의 중심도시 역할도 했다.

한국에서 중국에 가기 위해서는 꼭 이 심양을 거쳐야 했단다.


지금은 철도 교통이 발달해서 심양에서 베이징까지 3시간만에 주파하는 특급열차도 운행중이다.


지도를 다시 보니, 대련에서 평양까지 거리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사실에 놀라다.

사실 이 발해만 지역은 역사적으로 오랜기간 동일 문화권을 형성해 왔단다.



호텔은 철로변 도시 끄트머리에 위치했다.

그래서 그런지 매우 어수선해 보였다.

실제 중국도시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확장중이다.

그러나 아직은 규모에 치중하고 있는지 내부도시정비는 미흡한 실정이다.

상당기간 이 같은 어수선함은 쉽게 극복하기 힘들어 보였다.


호텔을 체크 아웃하고 대련역으로 향하다.

가는 길에 한인 교회도 보이고, 삼성전자 광고판도 보였다.

대련은 마치 일본의 어떤 도시처럼 일제 광고판이 압도적으로 많았기에,

삼성인 LG는 오히려 왜소해 보이기도 했다.



기차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표를 제시하고, 검색대를 통과했다.

한 역무원이 나를 제지한다. 아마도 가방을 보여달라는 얘기 같았다.

물론 내가 그 말을 알아들었을리 만무하다.

벙찐 표정을 지으니, 역무원이 오히려 당황하며 "니 시 한궈런(너 한국인이냐?)"고 되묻는다.

고개를 끄덕이니, 그냥 가란다.

머냐, 이 어색함은.


중국에서 기차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경험으로 '물' '간식' 그리고 '읽을 거리'가 필수적이다.

꽤 오랜시간을 기차칸에서 고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차시간을 기다리면서 '요녕성 지도'와 '물'을 구입하다.



오랜만에 중국 기차를 타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다.

사실 어제 잊고 있었는데, 잉쭈어와, 롼쭈어를 헷갈렸다는 사실을 깨닫다.

잉쭈어(딱딱한 의자)는 최하등급 좌석이다.  롼쭈어(편안한 의자)보다 아래단계다.

때문에 장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롼쭈어 표를 끊었어야 했는데...


얼결에 잉쭈어를 택했던 것이다.


우려는 점차 현실이 됐다.

대련에서는 조금 넉넉하던 기차 안이 1시간, 2시간...시간이 지날수록 입석 승객들로 붐비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기차 여행객들의 특징은 '어마어마한 분량의 수화물'이다.

모두가 이민가방 두개씩은 들고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이방인은 입 닥치고 조용하게 내 자리만을 지켜야할 분위기였다.

만일 화장실이라도 잘못 다녀온 날에는 내 자리 보존이 힘들어 보였다.



오랜만에 탄 잉쭈어. 장거리 여행객들은 무조건 '롼쭈어 이상 - 특히 롼와(침대차)를 추천한다.


늘어가는 승객들, 그리고 매번 정차하는 기차역을 확인해야 하는 피곤함.

게다가 도착시간이 언제인지 조차도 모르는 정보의 부재 속에서...

피할 수 없다면 즐기기로 마음을 다잡다.


그리고 내 앞과 옆에 앉은 한 가족을 주목하다.


이 가족은 대련에서 자신의 고향인 심양 인근 도시까지 향했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귀여워 어쩔줄 몰라 했고, 손녀는 마치 공주처럼 예쁘게 엄마 품에 안겨 있었다.

할아버지와 몇 번 눈이 마주치자 그가 내게 말을 걸었다.


"......." 내가 답을 못하자, 그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옆좌석 며느리로 보이는 여성이 나섰다.


"어디까지 가요?"

"심양 북역이요"(호자이)

"어? 외국인이세요?"

"네. 한국인이에요"(호자이)

"와, 한국인....아버님, 이 사람 한국인이래요. 어 그래? 와 신기하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중국 가족은 신기한 표정으로 내게 질문 공세를 쏟아붇기 시작했다.


중국에 왜왔냐? 왜 혼자 여행햐나? 중국어는 얼마나 배웠나? 중국에 몇번째냐?

나이가 몇살이냐? 심지어는 북한과 한국이 언어가 같은지까지 물었다.


어설픈 중국어로 답하며 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외국인에 대한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한국 젊은이(?)가 중국어를 조금이나마 할 줄 안다는 사실에 엄청난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에구, 한국사람도 한자는 꽤 안다니까요. 발음이 엄청나게 다르고 간체가 익숙치 않아서 그렇지"


9시 40분에 출발한 기차가 심양에는 4시경에 도착한다는 사실을 전해듣다.

맙소사. 무려 6시간 20분이나 걸리는 여행이었다는 말인가?



기차 안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끊임없이 손님이 바뀌었고, 기차역마다 입석 승객들의 승하차 과정의 일종의 전쟁이었다.

좁은 통로를 이민가방을 갖고 내린다는 것은 말 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덕분에 통로 쪽에 앉은 나는 졸지도 못하고 무려 6시간 이상을 시달리다.


어허허. 다음에는 절대로 더 따른 초고속 열차를 타리라.



드디어 4시 20분 경에 심양에 도착하다.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자리를 지킨 고생을 떠올리며 감격해 하다.

물론 나 역시도 기차에서 내리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전쟁을 치뤄야 했다.

기차에 올라타기 위한 사람과, 내리기 위한 승객간의 싸움은 마치 꽤 오래전 한국의 귀성전쟁을 연상시켰다.



물론 그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착한 가격을 생각해보면 중국의 철도는 꽤 매력적이다.

중국은 철도가 발달한 나라다.

사회주의 국가의 철도란 버스나 자동차가 부족했던 과거를 생각해 보면 그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중국 역시 거대한 국가를 통합하기 위해 철도망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해왔다.

한 선배는 중국의 철도 시스템을 경험하고 "한국보다 오히려 더 낫다"는 평까지 내놓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중국 동북아 지역은 특히 더 그렇다.


방대한 규모의 영토와 거기서 나는 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찍부터 철도의 중요성이 강조됐기 때문.

만주 지역은 게다가 일본이 지배했던 땅이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 만철(만주철도) 주식회가가 관동군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철도란 만주를 근대화시킨 제국주의 시대의 가장 확실한 유산인 셈이다.



기차역은 전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

짐을 찾아 내리는 승객, 그리고 그들의 무언가 기쁜 표정들.

뿌연 하늘의 심양북역에 다다른 승객들의 모습 역시 이와 같았다.




심양에 도착해 내려 바라본 첫 풍경.

무언가 거대해 보였지만 역사 도시의 정취는 정취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단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중요했다.

잉쭈어 좌석을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이 식당으로 달려가 또 다시 '니우로우미옌(우육면)'을 주문하다.


그리고 선양에서 꼭 만나야 할 어르신께 전화를 드리다.

그를 소개한 사람은 Y통신사의 모 부장인데, 예전에 중국특파원으로 활동하다 세상을 뜬 조계창 특파원의 상사였다.


"호자이, 선양에 가게 되면 꼭 P라는 조선족 어른을 만나게.

그분이 조 특파원 선양 근무 시절에 아들처럼 아낀 분이야. 무언가 큰 도움을 줄테니, 연락해봐"


예상대로 그 분은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아, 그분이 소개한 호자이 군요. 심양 북역인가요?

그럼 택시를 타고 시타로 와요, 내가 기다리고 있을테니..."




심양에 도착하자 마자 전날 대련라이프넷의 잭팍이 한 얘기가 떠올랐다.

"대련이 살기는 최고에요. 심양만 해도 중공업 도시거든요.

대륙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공기가 그리 좋지 않아요. 물론 중국에 공기 좋은 도시가 별로 없지만서도."


심양은 3월초라는 날씨에도 군데군데 눈이 보였고, 하늘은 마치 스모그 처럼 기분 나쁘게 뿌했다.

우중충한 날씨와 더해져 도시 전체가 음울해 보였으니 말이다.


택시는 다시 시타로 향한다.

시타란, 서탑이라는 얘기다. 심양은 역사도시인 만큼 도시 동서남북에 탑이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서탑 주변에 오래전부터 조선족들이 모여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90년대 한중수교 이후 한국인들이 집중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현재 시타주변은 한인거리가 됐다.

마치 베이징의 왕징처럼 말이다.

물론 한인거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심양 최고의 '환락거리'이자 '고물가 지역'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 어르신은 바로 이 시타에서 살고 있었다.




선양의 박씨 어르신


이번 여행의 원동력을 따져보면, 한 마디로 고 조계창 선배 때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지난 여름 그를 베이징에서 봤을 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선배! 내년 3월에 임기 만료라면서요, 제가 그 전까지 꼭 한번 심양게 갈께요? 가면 재워주실 거죠?


그런데 그는 임기를 불과 4개월여 앞두고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것이다.

혹시나 그가 남긴 무언가가 있을까 하여 한 겨울 심양행을 택했던 것이다.

물론 어설픈 부채감이었겠지만.


그가 심양에 거주할 당시, 그를 가장 많이 도운 사람이 바로 박씨 어르신이라는 얘기다.

그도 죽은 조계창 선배가 그리웠던지 나를 보자마자 그 얘기 부터 꺼냈다.


"어찌나 아쉬운지 몰라. 내 평생 그처럼 열심이 취재하는 기자를 본 적이 없거든.

그만 하라고 해도, 어찌나 뛰어다니던지...정말이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심양의 시타에 도착하자마자 어둠이 깔려버렸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도시에 도착해 처음 바라보는 거리는 그 도시에 대한 인상을 좌우한다.


중국은 도시 국가다.

중국의 농촌은 마치 동양화의 여백처럼 비쳤다.

그리고 심양은 만주지방의 온갖 군상의 인간들이 스쳐지나가는 기차역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 팔방으로 뻥 뚫린 대륙의 한 가운데 존재한다.

수 많은 농촌 사람들은 돈과 생존을 위해 사람들은 심양으로 모였고,

그들은 그 나름대로의 문화를 형성해 냈다.


심양이라는 도시에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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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홍선생 2009/03/29 12:09  Modify/Delete  Reply  Address

    근데요...미리 표를 사두지 않으면 루안쭈어는 좌석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어차피 침대차는 오버나이트로 운행되게 돼있어서 시간을 그렇게 맞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시간대에는 당연히 루안쭈어보다 침대차 좌석이 더 빨리 떨어집니다.
    저 지난번에 백두산에 갔을 때 이틀 연속으로 잉쭈어에서 오버나이트로 여행했어요.. 표가 없거든요.... 다음번에 가실 때는 조선배한테 부탁해 보시든지요... 기차표는 인터넷 예매 이런게 안되게 때문에 현지의 작은 여행사 통해서 미리 사두는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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