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지난 달에 찍은 사진 파일을 정리하던 도중,
WBC 결승전 당일 사진을 블로깅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다.
그리하여 조금 뒤늦은 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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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야구를 보던 나는 (한국이) 1:0으로 끌려가자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추신수의 동점 홈런이 터지자 마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하여 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서울광장 이었다.
물론 서울광장에 간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오전에 출근하면서 흘낏 곁눈으로 서울시청 앞 모니터가 작동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광장 옆 도로는 이미 야구경기를 관람하려는 운전자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 틈새로 끼어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주차를 해 놓고, 밖으로 나갔다.

꼭 이런 모습으로 시청앞에 모인 이들은 삼삼오오 경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물론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시청 건물에 임시로 설치된 전광판은 극악의 화질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 같은 악조건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청 앞에 모인 소수의 야구 마니아들은 일구 일구에 일희일비하며
숨죽이며 한 편의 잘 짜여진 무성영화를 지켜본 것이다.
탄성이란 추임새와, 그리고 자동차 경적이 만들어 내는 추운 겨울날의 극적인 조화는
사람들을 2시간 가까이 이 자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꽃범호님의 9회2사 후 적시타가 터지는 순간
광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물론 사람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이 가운데서도 한가로이 거닐던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재미난 구경이라도 하듯 이들을 지켜보며 제갈 길을 갔더랬다.

그날 오후의 일정은 엉망으로 꼬이고 말았다.
나와 함께 올드포토란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진성 과 함께
www.journalog.net/oldphoto
광장시장을 필두로 해서 서울 중심부 곳곳을 쏘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그냥 돌아다닌 것은 아니고, 그와 함께 시장의 술맛을 구경하며
시장의 역사를 탐구(?)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광장시장에서 시작한 여행은
이윽고 중부시장을 거쳐, 순식간에 방산시장에 이르고 말았다.

이진성이란 인물은 고향이 대구임에도 불구하고,
옛 서울에 대한 탁월한 기억력과 식견을 보여주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물론 서울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은 순수한 서울내기보다는, 고향이 서울이 아닌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학습법일 수 있다.
나 자신도 서울이 고향이 아니기 때문에, 제2의 고향으로서의 서울에 대한
지식에 목말라 한다.
일종의 '이 곳에서 살기 위한 투쟁의 방식'이라고 해야 할까?

서울 시내 시장 탐사(?)를 마친 두 남정네는
충무로의 한 양곱창 집에 둥지를 틀고 앉아 버렸다.
야구가 패한 날이기 때문에 나의 감정은 북받쳐 있었고,
그 또한 최근의 일련의 시국 사태로 인하여 매우 민감해져 있었다.
그와의 대화는 매우 유익했지만, 감정을 추스리는 데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결국 "당 업소는 고객님의 건강을 위하여 1인당 1병 외에는...."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간단하게 무시하고 말았다.
그날 밤, 나는 서울 어느 노래방에서 잠든채로 발견됐고, 급하게 택시로 후송됐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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