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녕성 7일차


압록강 앞에서 발길을 멈추다

 





압록강에 대한 이미지는 조금, 아니 상당히 패배적이다.

위화도 회군 때문일까?

혹은 조금은 야만스럽다는 압록강 너머의 외적 때문일까.

우리는 여전히 압록강 이남만이 한국, 혹은 조선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국 대륙을 돌아 압록강 반대편에 섰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중국이고, 저 안쪽이 조선인데....그 조선은 쉬이 갈수도 만질수도 없는 땅.


당초 나란 존재는 압록강을 너머 중국을 바라봐야 하는 게 정상인데,

얄궂은 역사가 나의 위치를 강 건너에 위치시키고 말았다.



단동역 앞 마오쩌둥 동상은 다행스럽게도 서쪽, 베이징을 향해 있었다.

동남쪽 평향을 향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단동 2일차는 날이 환하게 개었다.

물론 그럼에도 기온은 여전히 영하권에 맴돌고 있었다.

아침부터 짐을 챙겨 단동 구경에 나섰다.


잠시 버스를 타보기도 했는데, 워낙 좁은 동네다.

마음을 바꿔 걸어서 횡단해 보기로 했다.

 


단동역 앞의 재개발(?) 구역.

2003년 이후 중국을 다녀본 나로선 가장 흔하게 본 풍경이다.

중국의 어느 도시나 중앙으로 진입해 보면 이 같은 모습을 마주칠 수 있다.

1950년대 지어졌을 법한 붉은 벽돌의 군수시설 같은 건물들이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말이다.


아마도 단동의 도심도 머지않아 미끈한 빌딩들이 들어설 것이다.

 


내일 2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아침일찍 다롄으로 떠나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버스표가 충분했다.

문제는 시간.

오전 5시 6시 8시 이렇게 버스가 운행하고 있었던 것.

6시는 너무 빠르고 8시는 너무 늦어 불안했다. 어쩔 수 없이 6시 버스표를 끊었다.

80위안.

만 하루를 남기고 지갑을 털어보니.

1200위안에서 시작한 돈이 180위안으로 줄어 있었다.

민박집 100위안을 내고 나면 이제 80위안이 전부이구나.


한켠으로 대견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자. 어찌됐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이자, 마지막 행선지인 압록강으로 향했다.

단동역에서 압록강까지는 불과 500m에 불과하다.

 


저 멀리 압록강 철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압록강의 중국어 발음은 <야루쟝>이다.


막 결혼식을 끝마친 이들이 차량을 타고 압록강변 파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화려하게 치룬다는 중국인 얘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외제차 10여대를 동원한 풍선 연출은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다.


게다가 여기는 압록강변이 아닌가?



드디어 압록강변에 섰다.


어제 종일 꿈꾸던 이미지와는 판이했다.

사실 압록강의 첫 인상은 너무 우중충했다.

그러나 오늘은 햇살이 눈부시게 밝았고,

강변에 부딛힌 잔물결은 햇살을 머금고 켜켜히 부서졌다.

한 마디로 아름다왔다.

콘크리트로 뒤덮힌 한강을 바라보다 압록강을 접하고 나니

순수했던 어린시절로 되돌아 가는 느낌이었다.


누군가는 그물로 고기를 잡고 있었고,

누군가는 한가로이 강변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


나도 그들 무리에 섞여 담배 한까치를 꺼내들고 상념에 잠기다.

(물론 그렇다고 무슨 심오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압록강이 너무 아름다왔다는 것)



자세히 살펴보면 압록강 철교가 2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위에서 본 사진은 현재 단동과 신의주를 잇는 다리고,

압록강 단교로 알려진 이 철교가 바로 6.25 와중에 미국 조종사의 오폭으로 반파된 바로 그 다리다.


이 다리는 현재 관광객들을 위한 아주 좋은 상품으로 팔리고 있었다.

40위안을 내면 누구라도 북한의 비자 없이 거의 북한의 영토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리 절반위에서 느끼는 감정은 조금 새로울까?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이 단교 근처를 배회하며 고민했다.

40위안을 (사실 가격에 대한 기억이 확실치 않다) 지불하고 이 다리에 오를 가치가 있을까?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다음에 가자"였다. (기념으로 셀카 한 장)


사실 압록강 주변을 배회하며 내가 이곳 단동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그리 진지했던 것은 아니다는 반성을 하던 차였다.

별다른 고민 없이 우연히 단동에 당도한 것이다.


물론 비싼 입장료에 대한 반발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돈이 없었다

-_-



시간이 지날 수록 압록강변에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적잖이 몰려왔다.

모두들 나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철교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야루쟝 이라고 씌여진 비석 앞에서 감격해 했다.


글쎄 그들이 느낀 감격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 곳이 조-중 국경이구나. 이 곳이 바로 중국의 끄트머리구나" 하는 생각이 아닐까?


그러나 나 같은 반도 출신에게 다가오는 감정은,

이 곳은 아직 세상의 끝이 아니라는 것,

앞에는 또 다른 원더랜드가 존재할 것이고,

반드시 이 강을 건너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었다.


한 중국인 처자가 내게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너무도 친절하게도 강변에는 <중-조 변경, 단동 압록강>이라는 표식이 적잖이 보였다.

그리고 너머에 보이는 산뜻한 표정의 북한 건물들.


여담이지만, 단동에서 바라보는 신의주는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같이 정갈하고 고풍스럽다.

당장이라도 강을 건너 신의주 어느 예쁜 테라스 커피숍에서

왈츠를 들으며 커피 한 잔을 기울일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물론, 북한의 지도자들이 단동에서 보이는 북한의 이미지를 파악하고

얼마나 극진히 관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별다른 생각을 떠올리지도 못했다.

대학시절 독일로 건너가 활동했다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소설을  떠올려보기도 했지만.

나는 불행히도 그 책을 완독하지 못했다.

그저 이미륵이란 이름만을 한 켠에 저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수 없이 이 강을 건넜을 북조선 동포들과,

혹은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와

고조선-고구려를 건국한 아주 오래전 조상들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압록강은 고구려의 중심이었고, 언제나 민족사의 중심에 존재해왔다.


조약돌을 하나 집에 여행 가방에 챙기다.

언젠가 신의주를 통해 이 곳 단동에 오리라 마음을 먹었다.




압록강을 떠올리다 보니 문득 조선말이 듣고 싶어졌다.

아니 미칠듯이 조선음식이 먹고 싶었다.


그리하여 강변에 있는 삼천리라는 북한 식당에 찾아 들어갔다.

놀랍게도 이곳의 북한 여성들은 하나같이 통통하게 살이 올라있었다.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을 쳐다보니 일주일째 고생했던 탓인지 핼쓱했다.


그렇지만 그녀와의 대화는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보기엔, 나는 평범한 관광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일 거다.

그녀에게 천편일률적인 북한에 대한 관심을 표시하려다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그 열정을 주문으로 승화시키기로 마음먹다.


곧장 짠돌이 모드를 포기하고

이 곳의 특산물인 야루쟝 맥주를 주문하다.

개고기탕을 하나,

그리고 돼지 머릿고기 무침까지 주문했다.



여행의 든든한 동반자.

요녕성 정보를 제공한 롤니플래닛, 그리고 든든한 보호막 모자, 시계와 알람용 핸드폰, 그리고 담배 한갑



배는 불렀지만


주머니 속의 돈이 거진 비어갔다.


돈이 다 떨어지면서 내 여행도 끝이 났다.


내 여행이력의 또 다른 한 페이지가 씌여진 셈이지만,

왠지 모르게 마치 중국 담배 종난하이 처럼 이번 여행의 맛은 무겁고 살짝 독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기상해 6시 버스를 탔다.


중국 버스여행은 언제나 힘겹다.

좁은 좌석과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떠들어 대는 비매너 여행객들,

그리고 도대체 어디쯤을 지나치고 언제 내려야할지 모르는 정보의 단절까지.

......가장 중요한 점은 아침밥을 못먹은 상태에서 거진 11시가 됐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집에 돌아간다는 사실에 조금은 흥분이 되기도 했다.



4시간만에 도착한 대련.

버스를 타고 다시 중산광장에 도착했다.

일주일만에 다시 도착한 대련에는 물씬 봄의 향기가 풍겼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 무척이나 기분이 상쾌해졌다.



한 무더기의 비둘기가 후루룩 날기 시작했다.


아....배가 너무 고파 속이 쓰리기 시작했지만, 비둘기의 군무에 잠시 넋을 놓고 바라봤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만일 내가 이 곳 대련에서 산다면 무엇을 하고 살 수 있을까?

예전에는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들이 성큼 현실로 다가온 듯 싶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깨끗하다니.



돈이 없는 관계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다.

공항 근처 식당에 들러 8위안짜리 니로우미옌을 시키다.


이번 여행 마지막 식사가 되겠다.

너무도 자주 먹은 음식이지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잊지 못할 존재가 되고 말았다.



봄이 찾아온 대련공항.

아뿔사 1주일만 늦게 왔으면 편하게 여행했을 텐데.

반대로 생각하면, 1주일만 늦게 왔으면 요녕의 겨울을 못봤을 뻔 했구나.


다행이다.


다. 행. 이. 다.



게다가 돈도 부족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중국 핸드폰에 충전했던 50위안을 미처 다 사용하지 못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며 베이징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다.

그네들의 대답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추운 요녕을 혼자 다녀오셨다고요?"


"네. 그랬습니다. 정말 추웠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호자이)



=========================요녕성 여행기 연재 마칩니다(호자이)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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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애국지사 2009/05/07 16:32  Modify/Delete  Reply  Address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기자나 소설가로서 재능이 뛰어나십니다.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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