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미륵사지 석탑에 가보지 못한 사람이 내 주위엔 적지 않다.

그 이유는 조금 복합적인데, 문화재청장이자 대중고미술 해설가로 잘 알려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지적이 합당할 듯 싶다.

"작심하고 익산에 내려가 본 기억이 없다. 왜냐하면 딱히 1박을 해야할 이유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 그 누구도 익산(구 이리)를 전통문화의 도시, 혹은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도시로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한 영광을 차지한 도시는 국내에 단 세개 뿐일 듯. 경주 부여 그리고 공주.

1박을 할 필요조차 없다. 그저 남쪽을 내려가는 길에 들러 3시간 혹은 미륵산을 등반할 것이면 4~5시간이면 충분하다. 유홍준도 그리 하고 바로 전주로 내려갔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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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하는 가운데 출토된 금동 사리함이 출토되 전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 것을 반영하는 듯, 예전 미륵사지 석탑을 뒤덮은 가건물은 위로 초대한 칼라 현수막이 새로운 스타를 홍보하고 나섰다. 아마 15cm 정도의 사리함이었는데 무려 50m 정도의 크기로 확대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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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입구에서 본 풍경. 왼쪽 서탑은 현재 완전히 해체가 된 상태고, 10여년전에 복원된 동탑은 을씨년스럽게 홀로 우뚝 서있을 뿐이다. 물론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저 동탑은 '대한민국 문화재 복원계의 수치'로 불렸을 정도로 졸속으로 제작된 비운의 탑이다. 그러나 10여년 정도가 지난 지금 세월(?)의 세례 덕분인지 제법 고풍스러운 향기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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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옆에는 자그마한 박물관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물론 매우 소규모 박물관이다.
워낙 자주 가봐서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번 방문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유물을 하나 찾아냈다. 바로 나무신발이다. 한 눈에 일본의 게다와 흡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끈을 끼울때 쓰는 구멍의 위치를 주목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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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일본의 전통신발인 게다다. 백제시대 나무신과 달라진 점이라면 바로 받침의 위치다. 게다를 신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생각보다 걷기에 불편하지 않다. 바로 앞으로 쉽게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백제 시대 게다를 살펴보면 앞뒤 구분 없이 위치된 점을 알 수 있다. 일본에 들어간 게다는 그 뒤 1000년을 훌쩍 넘게 진화(?)해가면 아래 받침의 위치만을 살짝 바꿔 놓음으로 오랜 기간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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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 그 전주 토요일일 저녁에는 바로 연든행사가 열린다. 한국 불교계의 최대 행사라고 할만하다. 사실 그 장관을 보지 못한 사람은 한국 불교의 저력(?)을 미처 목도하지 못한 셈이다. 그리고 가장 최고의 작품이 바로 서울시청 앞 광장에 전시된다.

올해의 대표작은 다름아닌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이었다.

물론 누구나 쉽게 알아채진 못할 정도로 평범하고, 아니 평범하기에 더욱더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니, 오히려 1400년전 디자인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정갈하고 현대적인 조형미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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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 석탑의 민감성은 바로 석탑이 조선시대가 끝나기 직전에 심각한 붕귀위협에 쳐했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만약 근대를 맞이하기 전 그대로 붕괴가 됐다면 후대 사람들은 그 어떤 상상력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리병 같은 것도 도굴꾼에 의해 갈가리 찢겨나갔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근대를 바로 일제가 설계했다는 데 있다.

조선의 지방관리가 대한제국의 지방정부가 미륵사지에 대한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못한 상태에서 일제를 맞이했고, 조선총독부는 차마 붕괴를 놔둘수는 없고 이런 지방의 문화재에 거액을 들일 여력은 없고 해서 이른바 '시멘트 공법'으로 불리는 땜질식 처방을 가했다는 점이다. 그 덕분인지 미륵사지 석탑은 60년을 더 이어갈 수 있었고 결국 90년대에 대한민국 문좌재청에 의해 해체 복원 결정이 나게 된다.

이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한데, 미륵사지는 한국의 역사에 대한 처절한 알레고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유적을 지켜내지 못하고 콘크리트로 땜질식 처방을 거친 근대를 맞이했다는 점. 그리고 그 콘크리트를 떼어내기 위해 다시 수십년의 세월이 걸리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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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앞 석탐 연등앞 조형물에는 돌로 만들어진 현대적인 탑이 세워졌다.
그 탑을 이룬 돌에는 개개인의 소원 딱지가 붙어 있었다.

현대인의 소원이란 참으로 단순하고 명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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