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우 박사 | 공안과 내부 | 공안과 엘리베이터 숙녀 |
어릴적 공병우 박사에 대한 글을 여러 매체에서 본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중학생이었을 듯.
서울에서 아주 유명한 안과 의사인 공 박사가 어느날 한글 타자기에 관심을 가졌다는 내용의 잡지 기사였다. 그리고 그 안과 의사 할아버지는 독학으로 타자기를 마스터 하고 '공병우식 타자기' 그러니까 자판이 'ㅂㅈㄷㄱ'순으로 나열된 두 벌식 타자기가 아닌 '세벌식 타자기'를 만들어 냈다는 얘기였다.
물론 얘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글의 기계화(전자화)에 인생의 후반부를 투자한 그는 은퇴한 이후는 홀연 사진에 취미를 붙여 죽는 날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1995년 향년 90세로 별세한 그는 인생을 세 번 정도 산 셈이었다. 안과 의사로, 한글 기계화 전문가로, 그리고 사진작가로.
서울에 상경한 직후 광화문에 '공 안과'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만큼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요지였다.
오랜만에 안경을 바꾸고 싶어 서울에선 처음으로 안과라는 곳을 가게 됐다. 매번 스쳐지나다니던 건물에 들어서는 느낌도 남달랐다. 아, 이게 공병우 박사가 만든 건물이구나.
웬걸, 놀라움은 단지 기분상에 그치지 않았다.
10여층 정도의 낮은 빌딩에 차지하고 있는 3개층의 안과를 위해서 한 개의 엘리베이터에 '엘리베이터 걸'이 존재했던 것. "4층 입니다, 1층입니다"를 외치며 한 손으론 핸드폰을 떼지 못하는 20대 숙녀를 지켜보며 "아 진짜 공병우 박사나 이 조직이 꽤 올드 하구나"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혹은 일본식 문화가 오래 지속되는 것일 수도 있겠고, 지금은 경제성의 논리로 인해 사라진 엘리베이터 걸을 공안과에서 접하는 느낌은 매우 독특했다.
광화문을 지나다니던 분들은 한 번쯤 들러보는 재미도 있을 듯 싶습니다.
PS. 오랜만에 찾은 안과도 꽤 기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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