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대한 얘기는 많지만
길에 펼쳐진 정치에 대한 얘기는 흔치 않다.

해외 풍물에 대한 견문록도 적지 않지만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에 대한 얘기는 드물다.

그런 면에서 소설가 유재현 선생의 '온 더 로드' 시리즈는 현 시기 아시아 시민의 복잡 미묘한 표정에 대한 가장 탁월한 보고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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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기억을 걷다, 에 이은 2009년 최신작.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이 밖에도 유재현 선생은 미국, 쿠바, 캄보디아, 베트남 등 여러 지역에 대한 르포는 물론 거기에 기반한 캐릭터를 갖고 몇 편의 소설까지 쓰셨던 작가다.

아시아라는 키워드를 갖고 있는 매우 스케일이 큰 작가인데, 그는 그 이유에 대해 "국제전이란 성격의 한국전쟁에 대한 제대로 된 소설을 써보려고 보니, 자연스럽게 2차대전 이후 아시아 인민들의 제반 조건에 대해 폭 넓게 살펴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게 판을 키워놓고 보니, 한국의 특수성은 사라지고 거의 모든 아시아 인민/시민/국민들이 동일한 조건에 놓여있었다는 자각을 얻게 된 것이다.

예를들어 한국의 5.16군사 쿠테타의 모범 사례가 된 것이 바로 태국 군부의 쿠테타였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시 김종필 중령은 태국 관련 책을 옆구리에 끼고 숙달했을 정도라고 한다. 근대화에 대한 욕망이 표출되는 모습도 비슷했고, 식민지에 얼눌렸던 정치체제가 경제와 문화부문은 제외하고 정치부문만 교묘하게 독립하는 모습도 비슷했다는 얘기다.

태국은 왕정으로, 남한을 비롯한 많은 국가의 군부독재, 혹은 말레이 네팔의 술탄군주제 등등 다양한 형태의 체제로 나타난 아시아 각국의 정치적 지형 모두 알고보면 비스무레한 '아시아'란 반식민지 역사의 동일한 반복이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그의 책을 읽어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비통함과 놀라움을 동반할 수 밖에 없다.

첫번째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현실에 대한 암울함에서 오는 성찰이고, 두 번째는 신문과 방송에서 얻을 수 없는 새로운 정보에 대한 경탄이다. 일례로 그는 태국 민중들의 탁신에 대한 사랑을 "근거 있다"고 논증해 내고 서구인들과 심지어 아시아인들까지 경외의 대상으로 삼는 태국황실의 권위에 대해 "미국이 만들어 낸 환상"이라고 냉철하게 꼬집는다.

비교적 탁신에 관심이 많아떤 필자 조차도 이제껏 탁신을 "매판자본가에 질 나쁜 포퓰리스트, 때론 극우" 정도로 이해했던 나에게 그의 분석은 커다란 충격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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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는 소설가 유재현 선생(왼쪽)
























그의 현장 취재는 여러 대목에서 빛을 발했다.
뒷풀이에서 그와 나눈 KOICA에 대한 대화 한토막을 공개하면 이렇다.

_선생님 저도 아시아 취재 다니며 KOICA 여러곳에서 만나봤습니다. 저도 문제가 있다 싶더군요.

"아. 그랬나요? 우리나라 코이카는 명확하게 일본의 JAICA 모델을 따라했고, 자이카는 미국의 평화봉사단 모델을 따라한거죠. 우리가 얼치기로 제국주의 모델을 따라하고 있는 셈인데, 당췌 감당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거에요."

_저도 그 점을 느끼면서도 그럼에도 이렇게 라도 아시아와 끈을 연결하는게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일견 그렇기도 하죠. 그러나 그 이면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은 절대 유사 제국주의로는 답이 안나오는 구조에요. 1000년이 지나도 한국은 일본이나 미국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보죠. 우리가 ODA명목으로 한 한 사업당 최대로 동원할 수 있는 돈이 200억 정도라고 해봅시다. 플랜트도 하나 설치하고 다리도 좀 놓아주고.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서구 제국들은 수 조원을 들이기도 해요. 사업 자체가 다르죠. 이를테면 제3세계 국가 공무원들은 선진국들은 지원 받는데는 전문가들이에요. 한국 사업요? 먹잘게 없죠. 이런 방식으로 ODA 한다고 해서 눈하나 깜짝 안한단 말이죠."

(....)

아시아와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서로를 갈구하면서도 상호모순되는 말이 있을까? 서구와 일본, 혹은 군부와 자본으로 부터 철저하게 억압받고 있는 아시아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하는 길은 어떤 방법이 최선일까?

그의 책을 읽은 누군가는 "너무 암울하다"고 고개를 흔든다.

그러나 반대로 암울하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자위해 본다. 한때 민주주의 최전선을 달린다고 자부했던 대한민국 국민으로 언젠가 그 희망의 싺은 한국이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피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말이다.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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