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 타운의 건물은 뭐 하나 범상하게 생긴 물건이 거의 없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런 멋드러진 건물을 뒤로 밀림처럼 세워진
한국식 연립주택이나 아파트인데, 오히려 이런 어설픈 배경들이
차이나타운을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어디 하나 범상케 생긴 건축물이 없었다
차이나타운 내에는 유달리 큰 교회들이 많았다.
처음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 지역이 첫 조계지가 되면서 (당시 아시아 선교에 적극적이었던)
감리교를 비롯한 천주교 및 기독교가 가장 먼저 이 곳 중앙동과 관동에 전파됐기 때문이란다.
관동 교회라고 해서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 원지명이 '관동'이었다.
인천 중구청도 이 같은 차이나타운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구 일본 28은행 자리에 세워진 근대인천 건축관(?) 내부모습

근대 인천의 모습은 꽤 인상적이다.
내부를 채운 컨텐츠도 마음에 들 뿐만 아니라
100년전 모습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현장성이었다.
박물관 문 밖으로 나가면 일제시대 거리가 그대로 펼쳐진다.
일본식 거리 분류법인 '정목'도 간간히 확인될 정도다.

1900년대 초기 인천, 제물포 모형
저 언덕 위가 파라다이스 호텔이 있던 자리란다.
예전엔 주영 공관과 공사가 자리하고 있었다건가?
예전엔 주영 공관과 공사가 자리하고 있었다건가?
그리고 그 아래로 중앙동과 관동에 일본과 청나라 사람들이 사이좋게 땅을 갈라 건물을 지었다.
모형에서 보듯이 반듯하게 도시계획을 한 모습이 인상적이고,
지금도 저런 길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정리된 길일터이다.

어느 술집을 장식한 그라피티
1920년대 일제 대한민국 전역을 차지하면서 이 곳은 점차 중국인들이 모여사는 마을이 됐고
이후 일제가 패망하고 일본인들이 대부분 퇴각하면서 중국인들의 차지가 됐다.
물론 일본인이 비운 곳은 한국인들이 더 많이 차지했겠지만.
거리 곳곳에서는 중국인 할아버지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차이나타운에 사는 중국인 어르신을 구분하는 법은 너무 쉬웠다.
모자. 신발. 심지어 눈빛 하나까지도 한국 어르신들과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가장 멋진 건물이 있길래 다가가니 조선일보 깃발이 펄럭였다.
차이나타운 거리 뒷쪽 그러니까 중구청 앞은 거리 자체가 보석이었다.
마눌님과 함께 걷기 좋게 설게 된 그 거리를 걷고 또 걷다.
이젠 언덕 위 자유공원으로 올라갈 차례다.
모형도에서 보셨듯이 뒤편 언덕이 다름아닌 국내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자유공원'이다.
자그마한 야산 전체를 깎아서 공원으로 조성했기 때문에
겉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널찍하고 여유롭다.
분명 이 곳에는 일본 기모노를 입은 부유한 일본 상인들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맥아더 장군이 파이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공원 쓰레기통
물론 일본이 물러간 뒤 자유공원의 주인은 미국이 됐다.
간단하게 일본식 잔재가 청산됐고 맥아더가 가장 중심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난 언제나 맥아더 동상이 궁금했다.
내 군시절, 사단장 께서는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을 줄줄이 외울 정도로 그의 광팬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인천에는 맥아더 무당이 있을 정도로 맥아더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에게는 신화적인 존재다.

맥아더. 그는 자유공원의 수퍼스타였다.
그의 위상을 자유공원에서 직접 확인하다.
멋지다. 맥아더 장군.
50년이 지나도 건재하시구려.
자유공원에서 내려다보는 근대 인천, 제물포의 풍경은 일품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높은 건물들이 바로 송도 신도시다.

자유공원에서 바라본 인천과 송도
날씨가 좋아서 제물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멀리 보이는 인천 대교와 송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구 시가지 내에는 아파트가 적절하게 억제된 모습도 마음에 든다.
아파트란 도심 조경을 망치는 가장 큰 죄악이 아니던가.

인천 중구청 모습. 단정했다.
자유공원에서 내려가면 다시 반복되는 차이나타운 도보 관광이다.
한번 걸어본 거리라도 방향을 바꿔 걸으면 달리 보인다.
그 중심엔 인천 중구청이 자리한다.
정확한 정보를 잊었지만 해방 직후 혹은 직전에 지어진 이 건물은
과거에도 이 지역의 행정구역을 담당했었고, 지금도 그 역사를 이어받았다.
대한민국의 관의 역사의 뿌리를 상징하는 것 같아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그렇다고 오해할 만한 수준도 아니다.

일본식 주택 모습
중구청 주변은 고풍스러움을 더하기 위해 나무를 덧댄 디자인으로 통일시켰다.
때문에 마치 100년전 일본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안긴다.
이 건물이 대표적인데, 윗집 주인은 마치 일본인 처럼 보였다.
그가 꾸민 2층 정원의 아기자기함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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