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스타일은 명승지를 가거나 무작정 싸돌아다니기 보다는 현지사람을 찾아만나는 방식이다.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얘기는 그 어떤 정보보다 생생하고 유익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노하우'란 책이 아닌 사람에게 있다고 믿는 스타일.

이번 대만 방문도 그러고 싶어했다. 타이페이에 단 이틀 머물뿐이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쉽게 찾아질 줄 알았다. 출발하기 직전까지 말이다.

사돈에 팔촌, 페이스북과 MSN의 도움까지 받았지만 저녁 한끼 나눌 수 있는 지인에 지인을 수소문 했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대만은 여전히 우리와 너무 먼 존재인 듯. 적합한 상대를 소개받기란 너무도 어려운 과정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일본 친구 혹은 중국 친구를 둔 사람은 많았지만 대만 친구를 둔 지인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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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페이 처짠. 기차역. 시의 중심부에 자리했다.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우울한 마음으로 타이페이 기차역에 당도하다. 도시의 중심 기차역. 한 눈에 알아채겠지만 타이페이의 건축물은 매우 우중충한 외관으로 유명하다. 기후가 습기차고 언제나 우중충한 날이 많기 때문에 왠만한 건축물은 몇년만 시간이 지나도 저렇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타이페이는 재건축 같은 것은 없어 보였다. 대부분 오래됐고 유지보수비도 아끼는 중국인 특유의 실용정신이 더해져 저런 색의 건물이 주류를 이뤘다는 것.

MRT를 타고 민박집에 들러 숙소를 확인하고, 앞서 소개한 대로 카메라를 하나 구입했다.

그러고 나니 금새 저녁이 됐다. 당초 장제스 기념관이나 자유공원에 가고 싶었지만 그런 여유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피로가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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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 앞 학원가.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하여 기차역 근처를 천천히 걸으면서 타이페이 분위기나 느끼고자 걷고 또 걸었다. 만나야할 사람도 없고, 관광지 폐관 시간이 넘어버리느 흥이 나지 않았던 것.

"아, 함께 밥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은 매우 우울한 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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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앞에서 줄서서 체온을 재고 있는 학생들. 신종플루 영향이다.





















타이페이 처짠 앞은 일종의 학원가였다. 외국어 학원과 각종 수험대비 학원들 간판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꽤 많은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신종플루 영향인지 학원 앞에서는 체온을 재는 모습도 종종 목격됐다.  소심하기는, 일본인처럼...하고 생각했다가 마음을 이내 고쳐먹었다. 아참, 우리도 마찬가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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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PC 방 표시





















타이완이 불편한 이유는 다름아닌 한자에 있었다. 중국 간체자를 배우기 이전엔 북경이나 상하이를 가는 게 곤욕이었고 홍콩이나 싱가포르가 훨씬 편했다면, 간체를 배운 이후에는 중국이 훨씬 편해지고 이외 국가들은 너무나 불편해지고 말았다. 거리 간판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대단한 장애이자 여행의 답답함이다.

중화권 국가들은 간체와 번체를 어떻게든 빨리 통일하라~! 통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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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대만달러 저녁 식사.





















타이페이는 미식가의 천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건 있는 사람들의 얘기고, 점심에 카메라 비용으로 130만원 이상을 지불하고 나니 갑자기 지갑이 하얘졌다. 도대제 이번 여행을 어떻게 운영해 나아갈지 자신이 없어졌다.

망연자실함 속에 골목길을 걷고 있는 데 앞에 가던 학생 두어명이 쪼로록~ 허름한 분식집에 들어가 밥을 시킨다. 나도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중국어를 할 필요도 없이 밥을 가리키니 아주머니는 종이 그릇에 복음밥과 고기 조금 그리고 계란과 케찹을 넣어 준다. 나머지는 셀프다.

흐음. 내나이 서른 여섯. 타이페이에 휴가와서, 40대만달러(약 1600원) 저녁밥을 이런 학원가에서 먹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물론 맛있었다-_-
맛있었다는 게 더 우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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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장 한 켠을 당당히 차지한 한국음악























편의점도 구경하고, 만화방에도 들어가 보다. 대만 학원가엔 일본 만화방이 필수 코스처럼 자리하고 있었고 학생들은 그 곳 소파에서 휴식하고 있었다. 우리와 너무 닮은 모습에 흠칫 놀랐다. 놀랍게도 커다란 레코드점이 시내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일본음악 코너와 거의 동일한 크기로 한국음악 매대가 설치돼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물론. 이제는 당연한 얘기다.

타이페이 명물인 야시장을 구경하고 싶었으나. 이내 포기. 그냥 민박집에 가서 TV나 보며 맥주 한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다시 쪼로록 민박집으로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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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거(큰형님) 민박 집 내부.























돌아와보니, 총무격인 남자 대학원 생 1명, 일주일째 여름휴가를 타이페이에서 보낸 37살의 여성 한분이 계셨다. 그렇게 셋이 맥주를 마시기 시작하다.

  1. 남성. 27? 공대 졸업. 인류학도 공부. 대학원을 가기 위해 타이완에서 중국어 공부중. 중국학과 인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왜? 여기서? 타이완은 중국을 가장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 많은 나이에 전공 바꾸는 것 두렵지 않나? 글쎄 잘 모르겠다. 재밌게 살려고 한다. 왜 민박집에서 공부하나? 술 먹을 기회가 너무 많아 고민이다. 빨리 독립해야지.

  1. 일주일이나 타이완? 그렇다. 혹시 쏠로인가? 당근. 몇살인데? 너는? 너보다 누나네. 누나라고 불러라. 왜 대만인다? 글세 한번도 안와본 나라라 그랬다. 기대보다 훨씬 즐겁고 재밌었다. 또 오고 싶나? 글쎄. 해외여행 자주할 듯. 좀 그렇다. 여행이 지겨울 때가 됐는데? 솔직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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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만난 스쿠터들. 여기는 누구나 다 스쿠터를 탄다.






















두런두런 얘기 나누니 금새 맥주가 동났다. 내가 쏘겠다고 선언하고 민박집을 나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타이뻬이 변두리 주택가는 매우 한적하고 조용했다. 그 정적을 깨는 스쿠터 소리.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서나 스쿠터는 일상속에 너무 깊숙히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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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만난 익숙한 그림들.




















맥주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을 간판에 저런 미술작품이 걸려있었다.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버렸다. 저 랜턴 데셍은....80년대 미술학원을 다녀 본 이라면 한눈에 알아챌 수 있는 가장 유명한, 아니 이제는 너무 진부한 데셍 소재가 아니던가. 나도 국민학교 시절 저 랜턴과 석류, 아니 무화과를 수도 없이 그려본 기억이 났다. 그런데 저런 20년전 소재가 당당하게 타이뻬이 시내에 걸려있다니. 무언가 뜨거운 기분이 몰려온다.

이들 타이완 아이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헐리우드와 홍콩의 영화를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왠지 타이완이 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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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피지우~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와, 타이완 맥주를 배가 터지도록 마시다. 반갑게도 맥주값은 너무나 저렴했다. 전체적인 물가도 서울의 85% 정도일 듯.

그리하여 험난한 나의 타이완 첫날밤이 마무리됐다.

내일 아침 5시에 기상하여 공항으로 가야 한다.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는 조건이다.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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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헤이그 2009/10/17 17:33  Modify/Delete  Reply  Address

    행란입니다.
    고등학교 동창, 물론 남성여고,,
    원대 중문과 나와서, 지금 우송대에서 강의하는 친구가
    대만에서 3년이던가 석사했는데..
    한참 클론이 엄청 인기 끌던 시절에..
    혹 다시 또 가게 되면...연락 주삼..
    만날만한 사람이 있을는지 알아보께...
    건강하시고....연락 감사했슴당..

    • hojai 2009/10/20 19:03  Modify/Delete  Address

      네덜란드에서 댓글달아주니 고맙다만....^^; 언제 갈날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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