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군을 만난 때는 대학 1학년생이던 94년 봄이었다.

그는 재수를 해 한살 많았던 내 기준으로도 꽤 성숙한 학생이었다. 그런 성향은 꽤 오래 지속됐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에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 역시도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고 결국은 성공시켰다. 냉철한 현실주의자였기에, 뜬구름 잡는 식의 이상론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영어공부를 했다면 실제 영어 학습 책을 썼고, 경영학을 배웠다면 실제 사업을 통해 현실에 접목시켜 보는 타입... 어찌보면 가장 무서운 유형에 속한다.

그런 그가 모 대기업 소속으로 일하다 어느날 캄보디아를 자원해 갔다는 얘기를 듣고 속으로 "그다운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꽤나 도전적인 삶을 즐겨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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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첫 인상은 다음과 같다.

























어찌됐건 그와 캄보디아에서의 재회하리라곤 생각치도 못했지만 공자의 말씀대로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역호아" 어찌 안 기쁠 수가 있을까. 게다가 낯설고 물선 타이완에서 배곯다가 이런 오지에서 그를 만나니 반가움이 더욱 컸다.

그를 붙잡고 카메라를 잊어버리고 타이완에서 고생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 순간, 그의 운전사와 자동차가 앞에 당도해 있었다.
^^;
반가움이 배가 됐다.
역시 대기업 해외파견의 힘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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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인이 운영하는 캠리. 차주이자 운전사가 외국기업과 서비스 계약을 맺고 서비스 하는 시스템. 물론 기름값은 따로. 예상보다 훨씬 비싼 값이나 업체가 직접 차를 구입해 운영하는 것보다는 싸다고 한다.
























물론 주말이기 때문에 가능한 특별 서비스였을런지 모른다.
그런 그는 배곯은 나를 데리고 곧장 FCC로 향했다.

"FCC 알지? 거기 피자 끝내주게 맛있다"(S군)

"FCC? 파주 축구단지냐? ㅎㅎ 농담이고 잘 모르겠다."(호자이)

"실망인걸. 기자 친구 온다고 억지로 FCC로 가는데 말야. 영화 <킬링필드>에도 나오는 유명한 까페인데 말야."(S군)

그랬다. FCC란 Foreign Correspondent Club의 약자였다. 캄보디아의 근세사는 매우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영국과 프랑스 일본의 식민지 출신이다 보니 외세 기자들도 북적이는 땅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왕궁 옆에 이 같은 외국인 기자 클럽. 한국으로 따지면 서울 클럽 같은 곳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것. 영화 킬링필드에도 이 FCC는 매우 중요한 장소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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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C에서 내다본 메콩강의 풍경.

























그에게 듣는 캄보디아 개론은 매우 흥미로왔다. 네이버 백과사전이나, 캄보디아 카페에서 듣는 것보다 그의 9개월에 걸친 경험이 묻어난 생존기, 비즈니스 경험은 어떤 책과도 바꿀 수 없는 생생한 정보였다.

그러는 사이에 음식이 도착.

여행 3일차에 맛보는 처음 꿀같은 식사. 대충 그림으로 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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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C의 내부

































그는 FCC에 대한 조금은 슬픈 얘기도 하나 곁들였다. FCC를 처음 만든 사람은 프랑스에서 유학한 캄보디아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이 까페를 만들어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들리자, 그의 자녀들이 수차례 납치되는 수난을 겪었다는 것.

이 얘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여행 중 몸 조심하라는 얘기도 곁들인다. 어디서 어디까지는 치안이 잘 된 지역, 혹은 그 반대인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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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대표맥주 앙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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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C의 외관.





































FCC일정이 끝나고 그와 한 시간이 넘게 호텔방을 구하러 다녔다.

거의 모든 호텔 싱글룸이 하룻밤 15달러를 요구했다. 마치 담합이라도 한 듯이. 혹시나 했던 한국인 민박집도 정보지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긴 중국 대도시도 아닌 이 프놈펜에서 그런 민박집을 찾기란 쉽지 않을지 모른다.  

물론 15불 호텔들의 수준은 그저 그랬다. 내 친구S군은 "겨우 3일 묵을 것 4성급 호텔에서 지낼 것"을 강권했다. ^^; 아. 배낭여행자의 비애를 너무 몰라줘 서운키도 했다.

결국. 4곳이 넘는 호텔을 구경하고 나서야 겨우 햇볕이 드는 방을 잡을 수 있었다. 친구는 내가 방을 잡은 것을 확인하고 골프를 치기 위해 길을 떠났다.

혼자가 된 나는 피곤이 몰려왔는 지, 호텔 방에서 두어시간 잠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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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바라본 프놈펜 풍경.


























잠을 자면서 잠시 전 S 군과 하던 얘기가 꿈에 등장했다.

S 군은 유능한 대기업 소속으로 캄보디아에서 새로운 사업 혹은 한국에서의 사업의 연장을 꿈꾼다. 그러나 투자대비 수익이 날지에 대해서는 미지수다. 캄보디아의 미래 혹은 성장률과 연관됐기 때문이다. 가난한 캄보디아. 과연 그 안에 비전이나 미래가 있을까? 그것이 S군의 화두였다.

나는 순간 그에게 "가난한 사람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보자"라고 떠들었다.
어떤 근거나 이론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계속 머리속에 <가난한 비즈니스 모델>이란 단어가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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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눈에 헤진 바이크는 가난함의 상징이지만 그네들에게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캄보디아는 오랜만에 방문해본 가난한 국가였다.
인당 GNP가 600달러 내외다.
대신 신흥 시장이라는 매력 때문에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최근 중국을 오다니다 보니 가난함에 대한 감을 잃었다.
결국 이번 여행은 다시금 가난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을 수 있는 시간이 될 듯 했다.

가난함. 그리고 비즈니스.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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