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는 캄보다아 전역에서 약 4년간 걸쳐 전면적으로 일어난 정치투쟁이고, 일종의 내전이기도 합니다. 30년간 고난의 행군을 벌인 캄보디아 공산당 '크메르 루즈'가 친미 정부인 론롤 정부를 축출하면서 시작된 캄보디아 개조 프로젝트 입니다.

킬링필드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민주 캄푸차시기에 캄보디아의 군벌 샐로스 사르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라는 무장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말한다. 크메르 루즈는 3년 7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1/3에 해당하는 2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학살했다.----(위키피디아 '킬링필드)

말 그대로 학살을 벌인거죠. 초기 론놀의 친미정부 핵심인사 숙청으로 시작한 피의 보복은, 왕당파 친프랑스파, 친베트남파를 비롯한 외세를 등에 입은 정치 세력은 물론, 이후 마오쩌둥의 문화 대혁명을 방불케 하는 미시적 구별짓기까지 일어나, "안경을 끼고 있으니 저 사람은 글을 읽을 줄 안다"고 죽이고, 귀걸이 했다고 죽이는 일종의 아비규환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지난번 설명드린 대로 폴 포트의 이상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원시적 공산제도로 돌아가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미친 환상이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런 환상이 일어난 배경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여행도중 자꾸 머리를 스치더군요. 문득 킬링필드 유적을 보면서 먼가 기시감이 드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킬링필드를 여행오는 금발의 외국인들은 어떻게 이 사건을 이해할 지도 궁금해 졌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동시대를 경험한 아시아인, 한국 사람도 이해하기 힘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히틀러의 유태인 집시인 대학살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극우정권, 혹은 극좌정권의 미친 문화대혁명으로 생각할까?"....

일단 킬링필드를 잘 학습하지 못한 상태에서지만 저는 단박에 해방 정국이 떠오르더군요. 캄보디아 역시 프랑스가 물러나고 순식간에 4개의 정부가 교체될 정도로 정치가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지도만 봐도 단박에 이해가 되는게, 캄보디아는 세계 최고의 빈국이자 약소국입니다.

그런데 왼쪽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아세안 강대국 태국이 버티고 있고, 다시 오른쪽에는 아시아 최강의 공산당인 베트남 공산당이, 북쪽으로는 마오쩌둥의 중국이 버티고 있었죠. 게다가 캄보디아는 프랑스가 오랜기간 지배를 해왔고 시아누크라는 아주 싸이코 스러운 왕정이 유지됐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일본 세력도 한동안 정부를 구성하기도 했죠.

해방전후 조선의 상황도 비슷했죠. 소련과 미국이 승전국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을 분할하고 UN의 불안정한 통치가 시작됐습니다. 국내에도 공산당에서 부터 친미파까지 복잡한 정치다툼이 벌어졌죠. 그냥 다툼이 아니라 생과 사를 건너드는 테러와 폭력의 장이었죠. 실제 당시에 테러에 희생되신 분들도 많았고.

결국 이 같은 복잡한 정세는 6.25라는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정권이 뒤바뀌는 지역에서는 학살과 감금이 자행됐죠. 대략 아시는 내용이라 생략합니다. 제가 이해한 틀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는 정치가 불안정할 수 밖에 없는 약소 아시아 국가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내전, 전쟁의 외모를 갖지 않았을 뿐 결과적으로는 전쟁이었다는 관점으로 이해를 하면서 킬링필드를 받아들였습니다.

프놈펜의 뚜오슬렝을 보게 되면, 마치 하나의 코스처럼 킬링필드 위령탑을 방문하게 됩니다. 프놈펜에서 서북쪽으로 40여분 자동차를 타고 가면 나오더군요. 저도 자세한 위치를 모르겠네요.

프놈펜에서 가장 가까운 유적지이기 때문에 수 많은 관광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약 2~3만명의 어린이들과 민간인들이 이 수용소에서 약 2년간 살육됐다고 합니다. 하루에 50명을 죽여야 가능한 숫자 이네요. 에효.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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