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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의 행로를 거꾸로 따라가본 여정 

■ 2010-0418~0425
■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 방콕 4일차(4월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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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누가 뭐래도 전세계를 대표하는 불교 국가다. 그러나 불교로 통일된 왕정이라는 구체제가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막고 있기도 하다.


■ 치앙마이의 친탁신 시위대와 반탁신 시위대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가뿐했다.

어찌됐건 탁신의 친척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여정으로 기록될 것이다. 인근 국수집에서는 탁신을 거의 대통령 이상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왕.....까진 아니고...대통령 정도의 느낌. 물론 이런 표현은 법적으로 금지된다. 감히, 왕을 들먹이다니.

흥미로운 점은 탁신의 일가가 아직도 가업을 잇고 있다는 점, 특별한 정치적 탄압이 아직 가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태국 군부가 왜 정치적 탄압을 왜 못가하겠는가? 세무조사, 소방조사, 마음만 먹으면 못하겠냐만, 아무래도 대중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을 탄압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송태우를 타고 치앙마이로 돌아왔다. 그런데 문득 치앙마이 시내를 걸어서 횡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지나가건 뚝뚝 운전사들이 나를 붙잡는다. 왜 택시 안타냐고. 돈이 없다고 둘러댔다. 더웠고, 지저분했고, 생각보다 재미는 없었다.

그런데, 막 택시를 타려는 그 순간, 갑자기 앞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레드셔츠가 나타난 것이다. 아니 이런 반가울 데가,... 일부러 찾아가서 만나기도 힘들다는 치앙마이의 레드셔츠를 만나다니. 올래~

치앙마이 시내를 걷다가 우연히 찮게 일군의 친탁신 지지자들을 만나다. 그리고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그들 가운데로 쳐들어가 "Anybody Who can speak English?"를 외치다. 오. 감사하게도 누군가 영어를 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보다 훨씬 잘한다. 장소가 너무 시끄러워 인근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영어로 인터뷰가 진행됬는데 기억나는 것만 간단하게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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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군 놀이? ...얼굴을 가릴 이유는 없다. 매우 평이한 내용만 적었기 때문에.


2명의 대학생. 신분은 밝힐 필요가 없다.

-   왕실에 반대하나?
 
"절대 아니다. 태국왕이신 라마 9세는 60년간 재위하고 있다. 왕정은 태국에서 중요한 시스템이다. 우리는 왕정에 반대할 수 없다. 국민들의 정서에 반한다. 감히....때문에 레드셔츠가 왕정에 반대한다는 것은 모략이다.
 
-  그렇다면  탁신을 지지하나?

"아니다. 우리는 탁신의 정책을 지지하지, 탁신 자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 당신은 꽤 젊다. 방콕의 젊은이들은 보통 옐로셔츠던데, 당신은 언제부터 레드셔츠였나?

"믿을지 모르겠지만 불과 10여일 전이다. 정부가 불법적인 폭력을 쓰면서 부터다. 그간 쌓여왔던 태국의...모순이....태국에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레드셔츠가 그런 움직임의 발단이라 생각한다."
 
-  탁신은 복귀할 것인가? 그래야 한다고 보나?
 
"그것은 아닐 것이다. 법률에 의거해 합리적으로 처리하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선거도 있고... 중요한 것은 태국 민중들의 목소리는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 정부가 나서  탁신이 탈루했다고 하지 않나 부패하고. 예를들어 통신사 지분을 싱가포르에 팔고, 탈세하고…
 
"옐로셔츠가 흔히 모함하는 얘기다. 그럼 그 지분을 태국기업인에게 파나? 그것을 살 사람이 있을까? 탈세는 법률적으로 처리하면 된다. 돈에 국경은 없는 것 아니었나?"
 
-재선거는 언제가 좋을까?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그게 가장 좋다. 재선거해야 한다."
 




- 왕실이 문제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문제냐? 아피싯인가? 
 
"아니다. 아피식이 문제가 아니라 프렘이라는 90살된 노후한 정치인(전 총리)이자 군부 핵심 인물이 있다. 그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가 쿠테타를 주도하고 왕실을 좌지우지 한다. 그의 정계은퇴가 선행되야 한다. 그래야 협상도 가능하다."  
 

-  당신들은 사회주의자 인가? 왜 옷이 붉은색인가?
 
"왜 붉은색인지는 모르겠다. 일부 사회주의자도 포함됐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전체가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  탁신이 애국자라고 믿는가?
 
"그것은 중요치 않다. 돈에 국경이 없듯이…우리는, 태국의 민중은 그의 정책을 지지할 따름이다."
 
 
그는 매우 단호했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유학을 온 친구였다. 적지 않은 나이. 영어를 전공하고 있기 때문인지 영어가 나보다 100배 나았다. 물론 민감한 얘기가 많았지만 이정도로 정리한다.
 
■ 치앙마이의 반탁신 시위대

그리고 다음날 돌아오는 길에. 반탁신 시위대를 접할 수 있었다

이른바 애국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노란색과 푸른색이 감도는 태국 깃발 두개를 들고 자랑스럽게 애국가를 부르른 것 처럼 보였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치앙마이의 탁신과도 이별을 고해야 했다.
실크웜과는 작별인사를 할 수 없었다.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렇게 치앙마이의 취재 여행이 모두 끝났다.
 
마침 그날 처음으로 동남아 스콜을 접하다.
굉장히 멋졌다.
그리고 구름.
치앙마이와 작별
꼭 다시 돌아오리라.
 
방콕으로 돌아오는 길은 훨씬 힘들었다.
12시간이 걸렸고, 버스는 허리가 뿌러질 듯 아팠다.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아시아 남자들은 백인 여성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버스에 탑승한 백인 여성들은 유독 아시아 남자들만 피했다.
내 앞에는, 아주 객관적으로 정우성처럼 생인 일본 배우가 탑승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그와 나만이 버스에서 편하게 방콕까지 여행할 수 있었다.

이건 기뻐해야 할 일인지, 슬퍼해야 할 일인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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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만난 일본인 배우 요시. 그는 대장금 일본성우로도 등장했다고 한다. 정말 잘생긴 친구였다. ㅎㅎ

Posted by hojai.


탁신의 행로를 거꾸로 따라가본 여정 

■ 2010-0418~0425
■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 방콕 4일차(4월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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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벽에 걸어 놓은 촌부. 그는 탁신을 잘 안다고 얘기했다. 물론 탁신의 고향 아저씨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산캄팽)




 
■ 산캄팽을 향하다.
 
목요일. 탁신의 고향을 향하기로 마음먹다. 모두들 말린다. 가봐야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그 곳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니 온천욕이나 들기고 오라고 한다. 그곳에 가기 위해 먼저 치앙마이에 있는 한국 여행사를 들렀다.
 
미소네. 한국인 가게다.
 
그 곳에는 한국어과를 나온 이쁘장한 태국아가씨가 일하고 있었다.산캄펭 가는 길을 물어본다. 가지 말라고 말린다. 위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곳에서 탁신의 옛집을 물어보면 이런 시국에 위험할 수도있다고 경고한다.
 
어렵사리 썽태우를 타고 상캄팽으로 향한다. 우리로 따지면 약 리나 읍 정도의 도시다.
 
이 곳에서 탁신의 가문인 친나왓 패밀리는 실크사업으로 성장했다. 유학을 다녀와서도 모두가 실크사업에 매진한 것이다.
 
떠나기 전에 태국인 직원에게 또 한번 묻는다.
 
“탁신 좋아해요?”
 
나의 반복된 질문이다. 그녀는 "레드셔츠가 싫다"고 간접적으로 답변한다. 그녀는 난나라는 치앙마이 인근 지역 출신이란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마치 한사람을 위해 시위하는 모습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왕정을 지지하고 따른다는 것이다. 싫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도 했다. 정치보다 자신의 미래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다는 것. 탁신이 마치 왕처럼 뉴스에 나오는게 싫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물론 젊고 대학을 졸업한 중산층 보편적인 정치 성향이었다. 대부분의 태국 도시 거주자는 이 같은 정치적 편향성(?)에 빠져있기도 했다.




 
치앙마이 시내에는 칫나왓 이라는 실크가게가 있었다. 이 가게 또한 탁신 집안과 연관 있다는 얘기를 안진헌 씨가 슬며시 흘린다.
 
큰 마음을 먹고 들어가 본다.
 
“저는 한국에서 왔는데 이 곳이 탁신 전 총리의 친척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해서 찾아와봤습니다.”
 
“맞아요. 우리 닥터 탁신을 아시는 군요.”
 
종업원들은 탁신을 닥터 탁신으로 불렀다. 흥미로운 표현이다. 닥터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만으로 훨씬 지적으로 보인다. 총리나 경찰직급보다 더 극적인 반전이다. 그는 경찰로 재직하던 당시 텍사스 휴스턴에서 형사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가게에는 탁신과 관련된 많은 사진이 보였다. 흥미로왔다. 그러나 이 가게에는 탁신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흥미로움을 뒤로하고 산캄팽으로 향하다.
 
■ 아, 탁신의 사촌 누나?
 
1시간이 걸려 도착한 시골마을엔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20여분을 배회하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탁신 칫나왓을 물어본다. 한 오토바이 탄 젊은이가. 안다고 답한다.
 
아주 가까이 있다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 약 100여미터도 안되는 장소에 친나왓 이란 간판을 달고 있는 실크숍이 존재한다.
 
친나왓 Since 1920
 
정말이지 오래된 기업이다.
이런 기업에서 친나왓이 나온 것이다.
용기를 내어 들어가본다.
탁신의 얼굴이 크게 박힌사진이 보인다.
 
할머님 세분이 자리한다.
 
한국에서 왔고, 기자라고 밝히고 명함을 건넨다.
다행스럽게도 한 할머님이 영어가 가능하다
그녀는 아마도 유학파일 것이다. 책에서 본 것 처럼.
 
“나는 탁신의 누나이고, 저분은 엉클이에요.”
 
친누나인지 사촌누나인지는 모르겠다. 사촌이면 커슨이라고 했을텐데.
 
이름을 묻자. 피핀이라고 답한다. 피펜이었을까?
 
“탁신이 자랑스러운가요? 아니 닥터 탁신?”
 
“물론이지요. 그러나 일부는 그를 싫어하고일부는 너무 좋아하더군요. 우리도 아는 건 그뿐이에요. ”
 
 


그가 이 빌딩 위에서도 잠시 살았다고 한다. 볼 수 있냐고 묻자 거부한다. 대신 탁신을 좋아한다니, 사진을함께 , 탁신사진과 찍으라는 것이다. ㅎㅎ. 대신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찍는 것을 거부했다.
 
정말 평범한 노인네였다. 물론 영어를 한다는 점은 특이한 경우이겠지만.
 
그리고 사진에 나오는 할머님은 바로 그 뒤에 앉아계셨다. 다름아닌 숙모일테지.
 
 
■ 치앙마이의 친탁신 시위대와 반탁신 시위대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가뿐했다. 어찌됐건 탁신의 친척을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여정이었다. 인근 국수집에서는 탁신을 거의 왕처럼 존경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표현은 법적으로 금지된다. 감히. 흥미로운 점은 탁신의 일가가 아직도 가업을 잇고 있다는 점, 특별한 정치적 탄압이 아직 가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엿봤다. 정치적 탄압을 왜 못가하겠는가? 세무조사, 소방조사, 마음만 먹으면 못하겠냐만 아무래도 지역적 기반이 큰 정치인을 탄압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Posted by hojai.


신의 행로를 거꾸로 따라가본 여정 

■ 2010-0418~0425
■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 방콕 3일차(4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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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라롱콘 대 파숙퐁파이칫 교수가 저술한 '탁신-태국에서의 정치비즈니스'



■ 실크웜 출판사—이곳 역시 탁신에 대한 반감이 높았다.
 
 
치앙마이를 찾은 첫번재 이유는 탁신의 고향이기도했지만, 내가 가장 많이 참고한 책의 출판사가 바로 여기 치앙마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크웜 출판사는 동아시아에 관련된 학술서적을 출간하는 매우 권위 있는 출판사다. 게다가 모든 서적이 영어로 출간된다. 사장이 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다. 그렇다 보니 용감하게 탁신 비판서적을 그것도 탁신 집권기에 내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권위있는 출판사가 북부의 소도시에 존재한 다는 사실도 놀라왔고, 그렇게 뚝심있게 계속 출판을 해나간다는 것도 놀라왔다. (태국은 제1의 도시가 방콕 약 1300만명, 제2의 도시인 치앙마이의 경우 약 50만도 채 안된다. 그러니까 태국은 방콕의 나라인 셈이다)
 
아쉽게도 송크란 기간이 막 끝난터라. 사장은 휴가기간이었다. 파니다라 불리는 출판인이 나와 나를 만지해 준다. 이것 저것 묻고, 부탁하고, 청탁하고, 애원해봤는데 머 딱히 들어주는게 없었다. 조금은 쌀쌀맞은 편집인이었다.
 
1.    탁신의 고향마을게 가고 싶다.
2.    실크웜 출판사에 대해 궁금하다
3.    전문가를 소개해 달라. 인터뷰가 필요하다.
4.    당신은 탁신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요구사항은 거의 들어지지 못했다. 개정판이 나왔다길래 한권을 달래니 20$를 내가 사가란다. 정가 25$책이었다. 20% 세일해준 것에 감사(?)를 드렸다. ㅠㅠ 피같은 달라가 지출되다니.

30대 후반인 그녀는 방콕에서 공부한 인재였다.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 내 영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어찌됐건 그의 정치적 스탠스 역시 나와 비슷했다. 비인권적이로 비민주적인 탁신을 지지할 수 없다는 이유엿다.

어렵사리 찾아간 출판사에서 냉대 비슷한 것을 당하니 기분이 좋을리 업었다.
날은 비정상적으로 덥고, 치앙마이는 조금은 낯설었다.




저녁엔 밥을 먹으로 한 식당으로 향한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꺼내들자 안진헌씨와 같이 기거하던 (트레블게릴라) 옐로우 형이 제지하고 나선다.
 

“기본적으로 기붕 있는 곳에선 담배를 못펴. 모든 게  탁신의 유산이야. 아니 벌금내면 필 수 있겠다. 2000바트만 내면 돼 ㅋㅋ”


 
그러고 보니 기찻간에서도 비슷한 경고판을 본적이 있었다. 기차 안에서 담배를 피울시 벌금 2000바트. 마치 싱가포르식 정치다. 어찌됐건 효과는 보고 있다. 탁신이 경찰 출신이라서 그럴까? 탁신은 유달리 벌금을 좋아했다. 혹은 사회규율을 바로 세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살짝 박정희 느낌도 난다.

밤이 깊었고, 우리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때쯤 뉴스가 흘러나온다.
 
실롬에서 500여장의 전단지가 뿌려졌다는 것, 탁신을 대통령으로, 라는 구호가 쓰여있었다는 것. 탁신측은 반대파의 음모라고 즉각 부인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자리에 최 사장이 합류한다.
그는 전형적인 호남아에 쾌남이었다.
태국에 일가견이 있는 그에게 탁신에 대해 다시 물었다.
 

“난 탁신 좋아하지. 그는 김대중 김영삼 같은 굳건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어서 쉽게 안무너져. 다시 돌아올거야. 왕족? 왕족이 더 부패했지. 기본적으로 같은 도둑놈이라고 했을 때 탁신은 혼자만 먹겠다는 도둑놈은 아니거든. 그가 취한 교육정책을 봐바. 우리는 모두 탁신파야. 여기 치앙마이 사람들은 절대적이야. 못배우고없을수록 열광적이고.”
 


 
사람들과 이런저런, 태국 사회에 대한 얘기를 해본다
자연스레 계급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태국은 GNP가 8000달라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중진국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여기 타이항공에서 일하는 친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말이지. 자기보다 영어 못하는 사람이 없고, 자기보다 나쁜차 타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야. 아가씨들이. 그래서 아빠가 뭐하냐고 물어보니, 머 차이나타운에서 금방이 10개 빌딩이 10채 머 다 이런 애들이었다는 거지. 외국에서 공부하고 들어와서 결혼전에 심심해서 외국 항공사에 다녔던 거지. 여기 지엔피가 8000달라라고 나오지.


자 봐봐. 말이 되?
 
"내가 볼때는 4000불 정도도 안되보여. 물가나 생활 수준을 봐. 여기 노동자들 저축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엉망진창이야. 대신 있는 사람들은 대농장을 운영해. 거의 이래 나라 전체가. 탁신이 나와서 한번 뒤흔들어 준거야. 얼마나 신기한 일이야” -----A씨
 

이런 대화가 오갈때쯤, 태국의 부총리가 TV에 나와 중대 발표를 벌인다.
실롬에서 폭탄 테러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수명이 죽고 다쳤다.
용의자는 레드셔츠
드디어 태국 정국이 내전 상태로 치닫고 있었다.
물론 치앙마이는 너무도 조용했다.


 


Posted by hojai.


탁신의 행로를 거꾸로 따라가본 여정 

■ 2010-0418~0425
■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 방콕 2일차(4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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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신에 반대하는 방콕 시민들. 젊은층, 부유할 수록, 그리고 도시에 살수록 탁신에 대한 반감이 높았다.


■ 3일차: 레드마치—방콕 포스트
 
게스트 하우스는 외국인들이 많기 때문인지 영자신문이 널려있었다. 방콕포스트가 가장 유명한 신문으로 보였다.
 
유디디(UDD---레드셔츠
피에이디(PAD)---옐로셔츠
 
이 개념이 중요하다. 헷갈리지 말아야지. 신문에서 레드마치로 묘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오늘은 중요한 시위가 있다니 실롬으로 모인다는 얘기도 들린다. 잠롱 전 방콕 시장의 옐로셔츠도 인상적이었다.
 
나도 실롬으로 향한다.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지하철을 타고 실롬으로 가겠다는 전략을 써본다. 그렇게 되면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1시에 도착한 실롬은 아수라장이었다. 여러 구호들이 들려온다. 마침 시위가 벌어지고있는 것이다. 검은색 플래카드가 보인다. 아. 이건 반탁신 시위일까?
 
“탁신 당신이 죄가 없다면 스스로 증명하라”
 
실롬 삼거리는 반탁신 시위대의 평화로운 시위가 한창이었다. 태국 국기를 나워주는 사람이 있었고 누군가 확성기로 탁신을 비난하고 있었다. 물론 이들을 지켜주는 것은 군인이었다.
 
수백명은 약 1시간동안 아마도 점심시간이었나 보다, 시위를 끝마친다. 나는 이곳을 방황한다.
 
그 때쯤 펑펑 최루탄이 터지는 소리를 듣는다.
아뿔사, 이곳이 바로 친탁신 시위대와의 경계지점이구나. 멀리서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혁명군을 방불케 한다. 그 뒤로 룸피니 공원을 붉은색 시위대가 장악하고 있다.
 
강남 진입을 바라는 농민시위대와 정부군의 대치지점이랄까. 분위기는 마치 전쟁을 앞둔 검투사의 마음이 되어간다.
 
무섭다.  
저들이 밀고들어오는 날이면 군대가 총을 쏘겠구나.
 
태국 군인들은 총을 휴대하고 다니고있었다. 그리고 일부 건물 관리인들은 혹시나 시위대가 진입할까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다. WI-FI 잘 터지는 맥도널드에서 다시금 방황하다. 아.
 
 따지고 보면 태국 국민은 탁신을 통해 처음으로 민주주의 단맛을 본 것이다. 이제 그 단맛이 쓰게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리라. 아니 이미 쓴 맛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거쳐야할 과정이다. 누구라도. 아시아 국가라면 더 절실한 쓴맛을 말이다.
 


 
■ 탁신의 고향을 가기 위해 치앙마이로 향하다. 
 
치앙마이에는 안진헌 선생이 먼저 진을 치고 있을 터이다.
 
“태국 사람들은 즐거운 것을 좋아해요. 이런 말도 있었죠. 전 민주당 정권이 스캔들이라도 하나 터졌으면 계속 유지됐을 거라고. 왕실은 따분하고 기존정치인은 재미가 없졌죠. 그런 면에서 탁신은 끊임없이 이야기 거리를 만들었죠.”
 
안진헌 선생은 내가 제일 존경하는 한국의 여행가이다. 이미 14년째 아시아를 순례중이다. 물론 흔치 않는 여행가다. 집요하고 끈질기고 결국은 아시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가운데 한명이다.
 
“저 역시도 탁신에 그리 좋은 감정은 아니죠. ㅎㅎ 태국의 무선전화 보급률이 가장 빨랐다고하죠. 다 탁신 재임때죠. 자기 회사였으니까. 그렇게 키워서 싱가포르에 팔아먹었고 탈세했으니 곱게 비칠리 없죠. ..완전 파퓰리즘이죠. 무상교육에 무상의료. 30바트만 내게 하고 의료를 했으니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겠어요?”

 
 
무려 16시간 걸려 도착한 치앙마이는 방콕과는 완전 다른 마을이었다. 아마도 경주 정도가 될까.
 
치앙마이는 탁신의 고향이자 정치적 본거지다. 기본적으로 탁신은 방콕을 제외하고 남부 이슬람 지역을 제외하고 거의전지역을 석권해왔다. 치앙마이가 그 북부의 대표지역이다. 태국은 방콕 중심화가 심각한 나라다. 일례로 태국 2의 도시라는 치앙마이의 공식 인구가 30만 내외에 불과하다. 방콕이 천만을 넘어 2천만 도시로 가는 것과는 천양지차의 경제력 차이다.
 
그런 소도시에서 탁신이 태어나고 정치적 야망을 키웠다?
 
게다가 이 도시는 마약의 수도라 불리는 치앙마이 삼각지와 불과 수백여 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외지다. 고산족이 존재하고, 중국 국경도 멀지 않아 탁신의 조상도 수백년전 이곳에 흘러들어왔다고 한다.
 
이 곳의 분위기는 방콕과 조금 달랐다.
 
우선 송태우를 타고 치앙마이 시내로 들어가는데, 노란색 깃발 보다는 붉은색 깃발이 조금 엿보였다. 게다가 그 집 안으로는 왕실 사진과 더불어 탁신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오호!

드디어 탁신의 그림자를 조금 볼 수 있을까?


Posted by hoj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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