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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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조계창(36) 선양 특파원이 2일 중국 지린성에서 교통사고로 순직했다.
조계창 특파원은 이날 오전 9시30분(한국시간)경 중국 지린성 옌지에서 연변대 김병민 총장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 내부에서도 특파원이 현지에서 사망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충격에 휩싸여 있다......
* 펌질해서 죄송합니다.
누군가 오랜만에 "OOO알아?" 하고 물어볼 때, 살짝 겁이 날 때가 있다.
'이 친구 무슨 사고 친거 아냐?'하는 생각에서다
베이징에서 친분을 쌓았던 조창완 선배가 오전 내게 "중국 조계창 특파원 잘 알아?" 하고 물을 때
바로 그런 느낌이 살짝 스쳤다.
"네 잘은 아니고, 조금 알죠 ^^;"(호자이)
"그 친구 엊그제 죽었데... 교통사고로."
"헉"
살아갈 날들이 적잖은 나에게 이런 일들이 무수히 닥치겠지만.
30대 중반의 나이에, 그것도 아주 평범한 목요일 아침에,
그리고 그 대상이 한창 뛰어 놀 아이가 둘이나 되는 지인이라는 사실은
인생의 불행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금요일에 시신이 서울대 병원으로, 그리고 월요일 새벽에 발인한다"는
소식를 연합 후배에게 듣고나니
더이상 남얘기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베이징에서의 우연한 만남 ============
3개월 전 나는 8박9일의 일정으로 중국 베이징과 옌지를 다녀올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블로그를 통해 설명을 드린바 있다)
회사일이 아닌 순수한 사적인 취재였기에 자유롭게 베이징을 휘젖고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어찌저찌 연합 조계창 선배와 연결이 된 것이다.
(형수께서 외고를 나온 기자출신인 탓도 있다)
그런데 조 선배는 중국 심양 특파원이기 때문에 베이징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알고보니 베이징 올림픽이 머지 않았기 때문에 8월만 베이징에서 올림픽 취재를 하고 있었던 것.
중국에서 제대로 된 취재 활동을 하는 이가 몇 분 없기 때문에(보도통제가 만만치 않은 탓이다)
게다가 그가 조금은 중립적인 언론사 소속이었기 때문에
낯선 베이징에서 그의 소식을 접하라 수 있었던 것이다.
2년 정도 못봤을까?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저 OO 호자이인데, 심양 안계시고 베이징 계시네요."
"어, 너가 베이징에 웬일이야?"
"놀러왔습니다. 저 옌지에 가고 싶은데 선배가 조금 도움을 주시면 안될까요?"
"그래 그럼 베이징 요의상디엔 옆 외교부 쪽으로 와서 전화해라."
그리하여 예정에 없던 '友宜商店'이라는 곳까지 털래털래 걸어가서 외교부 옆 스타벅스에서 그를 30여분 정도 기다렸다. 그는 마감을 마치고 헐레벌떡 뛰어와서 커피를 한잔 샀더랬다. 8월초의 매우 더운 베이징이었다. 날씨는 꽤 근사했고, 요의상디엔 근처의 정부청사들은 마치 유럽인양 크고 화려했다. 거리는 가로수 그늘이 널찍이 펼쳐져 스타벅스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꽤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이왕이면 정확하게 그 상황을 기억하고 싶다)
"베이징에 왜왔어? 너도 중국 취재하니?"(조계창)
"취재는 아니고, 두루두루 아는 분들좀 인사드리러 왔어요."
"너 부서 옮겼다고? 이왕 갈거면 월간지로 가지 그랬어. 긴 호흡으로 취재하는 게 좋은데... 신동아 황OO 기자 봐 우직하게 계속 외교안보 취재하잖아. 주간지가 답이 없어 보이지만, 일간지도 꽤 괜찮게 취재하는 데가 없어서 걱정이다. 외교 안보 쓸거면 월간지가 차라리 더 나은 면이 있어. 왜냐하면 맥락을 알고 쓰니까 취재원들이 입을 열기가 조금 더 편안한 것 같더라. 나 같은 통신사 기자에게는 말을 참 가려한다니까. 그게 좀 어렵지... 그래도 성과가 매우 크다."
그는 자신의 일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연합뉴스 최초의 심양 특파원이었다. 심양이라는 위치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심양은 북한 관련 뉴스가 탄생하는 단둥/옌지나 베이징의 중간에 위치한 지역이다. 과거 중국 특파원은 베이징에 머물면서 중국 정치 관련 뉴스를 쓰거나 홍콩이나 상하이에 머물먼서 경제 관련 뉴스를 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이징과 옌지에서 북한 관련 뉴스를 쓰는 대북 전문 기자들이 있다.
90년대 후반 이후 탈북자가 급증하고, 우리 조선족 커뮤니티가 변질되면서 대북 관련 뉴스가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근거가 희박한 소식통들이 급증했고, 북한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말도 안되는 사건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극우 탈북 단체들 생겼다. 이들은 심지어 자기들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념이 더해진 뉴스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니 대북 정보의 질서가 흔들린 것이다.
그리하여 연합뉴스는 심양 특파원을 신설하고 민족뉴스부에서 대북, 조선족, 중국 관련 취재를 해왔던 조계창 특파원을 2006년 심양에 파견한 것이다.
"나는 심양에 버티고 서서, 말도 안되는 소문들을 걸러 내는 일을 하고 있어. 내가 심양에서 크로스 체크 하니까, 과거에 단둥에서 활개쳤던 OOOOO애들 콕 들어갔잖아. 처음에 오니까 어찌나 말도 안되는 가짜 취재원들이 활개치던지, 돈을 달라는 사람도 많았고...., 여하여간 아싸리 판이라서 긴장될 수 밖에 없는데...시간이 지나니 좀 살만하다. 고급 취재원들도 많이 만들었고...." (조계창)

제대로 된 사진을 한장 찍고 싶었지만, 그는 자기 얼굴이 찍히는 것을 싫어했다. 첩보 활동에 준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듯. 나는 "저 혼자만 갖고 있을게요"라고 말하고 찍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초 대검찰청에서 였을 것이다. 그는 당시 연합 법조 2진이었다. 당시 어리버리했던 초짜 기자였던 나에게 밥을 사준, 그리고 정보까지 나눠 준 몇 안되는 선배였다. 당시 2004년~2005년은 한나라당 대선자금 비자금에서부터 시작해서 대북송금 특검 등, 유난히 커다란 사건이 많은 시기였다.
당시 모두들 진이 빠져 있던 시기 그는 유쾌한 표정과 냉철한 일처리로 적잖은 동료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그런 그는 법조기자생활을 마치고 목표한 바가 있었는지 대북 관련 기자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가 한국에서 만난 조선족과 탈북자들이 수 백명은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열심이 취재했다. 그리고 중국으로 훌쩍 떠났다. 심양에서의 활동은 말 안해도 알 것이다. 그런 그가 3년의 임기를 단 3개월 남기고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원래 이런 사진은 내 컴퓨터 하드에 오래동안 개봉되지 않고 있어야 옳다.
베이징에서 단 1시간 정도의 만남은 평생 잊지 못할 시간으로 남을 것 같다.
그의 얼굴은 심양에서 새까맣게 타 있었고 나는 베이징의 더위로 인해 피로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옌지 취재에 대해서도 몇가지 팁과 조언을 했었다.
미처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수첩을 찾아보니 제대로 적어 두지도 않았다. 몇 가지만 기억을 떠올리면, 그는 철거된 백두산 호텔에 대해 이야기 했었고, 강호동의 1박2일이 휩쓸고 간 연병의 속사정에 대해서도 귀뜸했던 것 같다. 사실 그의 조언대로 용정의 대성중학교에 갔던 것이고, 그의 말을 확인하러 백두산 까지 갔더랬다. 게다가 그가 소개해 준 몇명의 취재원에게도 연변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전화를 했던 것 같다.
조심스럽게 그의 지난 기사들을 살펴본다.
그는 무수한 특종을 남겼고, 대단히 빛나는 기사를 세상에 남겼다.
(뉴스 소비자들은 뉴스와 팩트가 얿마나 많은 노력을 거쳐 세상에 나오는지 알아줬으면 한다)
내 기억으로 그는, 바람직한 남북관계와
더 큰 눈으로는 남북통일과 민족의 공존공영을 위해 일해온, 지독하게 치열한 취재기자였다.
팩트를 희생해가며 이념을 좆지 않았고, 개인적 욕심을 위해 팩트를 남용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옌지 취재를 마치고 투먼으로 향하는 길에서 불귀의 객이 됐단다.
마땅히 후배이자, 후학의 입장에서 슬피 울어야겠다.
하느님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데려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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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인을 추억하는 일은 소중한 것 같습니다.
안타깝네요.. 저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분에게 바스피아 소개해드린 적 있습니다. 들어본 적 있다고 하시더군요.
옌지-투먼 총알택시를 타셨던 모양이군요. 7월에 백두산 갔을 때 이도백하에서 옌지 가는 버스 놓치고, 이도백하-옌지-투먼 이렇게 버스 갈아타고 갔었는데 버스도 좀 위험하게 가더라고요.... 휴 하여간 중국에서 시골길에서 차타고 다니는거 사실은 목숨내놓고 여행하는 거죠... 그때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조마 조마 했는데.... 피곤한 차에 투먼에서 옌지까지 200원한다는 택시를 탈까 잠깐 고민도 했었고... 근데 백두산 호텔 철거했어요 ? 저 7월말에 거기서 묵었었는데... 그때 쥔장이 공산당에 싸바싸바 잘해서 철거 안한다고 들었었는데
사실 저도 옌지 근처에서 4명이 돈을 모아 타는 총알 택시를 타본 적이 있는데요. 밤에 30분만에 50여 km를 주파하는데 정말 무섭더군요. 4명 모두 조선족이어서 조금 놀랬다는. 이번 사고낸 분도 조선족 운전사라고 하더군요. 운전사는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답니다. 에효.
참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네.....
오늘 영결식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 때문에 더 슬펐다. 항상 몸 조심하고. 살아있기에 정도 나눌 수 있다. 잘 지내라..